▲눈물 흘리는 박영선 의원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8일째인 1일 오후 국회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트를 하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당과 거대정보기관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 "과반 의석을 주시면 국민여러분이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우성
선거구 획정과 총선을 앞둔 현실론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비대위를 포함한 더민주 지도부의 오판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형성된 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호응과 신뢰를 날려버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더민주 입장에서는 일주일 넘게 지속된 필리버스터 기간 동안, 새누리당만 쳐다보지 말고 꾸준히 '잘 지는 필리버스터'를 준비하는 동시에 대여와 청와대에 대한 압박의 수위와 공세를 높이는 양면 작전이 필요했을 터다. 하지만 필리버스터의 끝은 눈물과 호소, 변명과 남 탓이라는 기존 정치의 낡고 낡은 이미지로 귀결됐다. 박영선 의원의 눈물이 대표적이다.
"국민 여러분,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저희가 그것을 다 압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저희가 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총선에서 국민 여러분이 과반의석을 주시면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저희를 믿어주세요, 저희들 할 수 있습니다."3.1절 저녁, 필리버스터에 나선 박영선 의원의 발언 중 일부다. 누구는 "박근혜 대통령을 닮았다"던 박영선 의원의 눈물 어린 호소는 그러나 어떠한 신선함도 주지 못한 채 '선거운동'과 '기존 정치의 답습'이란 최악의 평가를 낳고 있다.
그 눈물이 여당 지지자들에게, 중도층에게 어떤 위화감을 주고 내부 역풍을 일으킬지 박영선 의원은 고려했던 걸까. 국회방송의 시청률이, 떨어진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으로 생중계 시청자가 적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것인가.
SNS 상에서 쏟아진 비난을 놓고 볼 때, 이 눈물은 필리버스터 지지층에게 특히 더 반발을 산 것으로 보인다. "필리버스터 중단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 쏘라"며 "제 발언이 끝나면 트위터, 인터넷 댓글창에 제 비난이 넘쳐날 것이다. 국정원의 댓글 팀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까"라는 발언 역시 화를 불렀다. 비대위에서 김종인 대표와 함께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필리버스터 중단을 압박했다고 알려진 박영선 의원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이 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바로 전날인 2월 29일 3당 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함께 참석,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법, 이슬람 관련 법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필리버스터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산 직후였다.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동료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던 그 순간에 말이다.
29일은 보수 기독교 표를 구걸하고, 3.1절에는 필리버스터 단상에서 과반수 야당을 만들어 달라며 표를 달라던 박영선의 눈물. 국민의당 창당 전후 박영선 의원이 '탈당 고려'를 흘리며 주가를 올렸던 전력은 둘째 치더라도, 야당의 변화를 원하는 지지층이라면 그의 눈물을 기존 정치의 구태와 정치쇼로 받아들이지 않았겠는가.
필리버스터의 허망한 결말, 뒤에서 웃고 있는 자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