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남소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컷오프(공천배제) 되자 이에 항의하는 진보 성향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에 대해 더민주당은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한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안다. '싸가지 없는 진보'의 대명사로 알려진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해 '더민주당은 싸가지 없는 진보가 아니다'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선거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정치공학적 관점을 배제한 채 이와 같은 시각이 갖는 문제점을 비판하려한다. 사실 냉정한 시각에서 정치공학적 관점만을 놓고 보면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는 장단점이 모두 있다. 장점은 강경한 운동권 이미지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중도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적극적 참여 성향이 강한 진보적 시민들의 반발과 이탈 가능성이다. 이것의 총합이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치공학적 진단과 해석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이것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오게 된 정치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흐름과 맥락에 대한 고려도 없이 단지 지금 보이는 현상만을 놓고 계산기를 두들겨서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게 되면 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이 초기 제기되었을 때는 유의미한 가치를 지녔으나 지금은 오히려 진보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정청래의 컷오프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 진보 야권에서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진보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싸가지 없는 진보는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가 쓴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통해서 널리 회자된 담론이다. 진보 엘리트 세력의 독선적인 태도와 적극적 지지층만을 고려한 편협한 태도 등이 진보의 패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유연한 태도를 통해서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인식은 대중적으로도 확산되어 있다. 그래서 강준만의 이와 같은 설명과 지적은 지식인 차원의 논의를 넘어서 실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독선과 편협함 같은 진보 세력의 태도만으로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논거를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진보 세력의 주된 지지층은 이렇다. 학력은 고학력,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문화적으로는 리버럴 성향이다. 고학력 도시 중산층이 한국 진보 세력의 가장 핵심 지지층인 것이다. 그런데 진보 세력은 중산층과 서민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는 1:99라는 이항대립적 선거구호를 내세워 99%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 선거 결과를 보면 경제적 빈곤층은 보수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고학력 도시 중산층에 기반한 진보 세력에 대한 빈곤층들의 정서적 거부감과 관련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대중적 확산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필자는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사람들을 심층인터뷰 하여 최근에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책을 냈는데, 여기서 빈곤층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진보 세력을 거부하는 원인을 분석했다.
이 연구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경제적 빈곤층이 진보 엘리트 세력들에게 문화적 소외감과 정서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문화적 코드가 맞지 않아 정치적 정체성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진보 세력의 독선과 편협함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싸가지 없는 진보론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결정적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사회운동을 할 때 이론과 역사에 대해서 식견이 높지만 대중성이 약한 운동가들을 보고 흔히 '먹물좌파'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빈곤층들은 진보 엘리트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서적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언어와 태도에서 괴리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빈곤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계급 전략을 동원하지만 그들은 이 전략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진보 세력을 '나와 다른 사람들'이자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갖는다. 그래서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청래를 컷오프 할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