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2012년 3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교육공공성완전실현 프로젝트<보고있나>국민대회'에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규탄하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20대의 투표 참여로 20대의 삶을 바꾸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투표심판론'을 이루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는 바로 '타자화'이다. 대상을 정하고 계속 타자화해 가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이 오히려 이 이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20대 개새끼론'인데, 이는 20대, 특히 대학생이 투표일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여가만 즐기기 때문에 범진보 계열이나 야당의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다는, 그렇기 때문에 20대는 시쳇말로 '개새끼'라는 정치 괴담이다.
그런데 이 괴담은 기성세대의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무슨 과학처럼 퍼지곤 하는데, 사실 이것은 이른바 '꼰대질'에 불과하다. 예컨대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씨 같은 경우는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이 괴담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전파자인데, 김용민 씨 외에도 많은 '꼰대'들은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여러 조사에 의하면 20대 투표율은 평균치보다 낮은 편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점점 적어지는 추세이기도 하고 비난의 주된 대상이 되는 대학생 계층의 투표율은 집계되지 않는다. 출구 조사에서도 직업은 잘 묻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정치 괴담은 근거 없는 타자화와 대상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이 근거 없는 괴담의 신봉자들은 그 '20대'가 투표를 야당 –정확히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거대 야당- 에 할 거라는 생각을 너무도 쉽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생각이 없었다면 이 '20대 개새끼론'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물론 20대를 비롯한 젊은 층이 기성 세대에 비해 조금 더 진보적 경향을 보인다지만, 그렇게 넘겨짚는 것은 오류를 넘어 망상 수준이다.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여성과 군소 진보정당 지지자 또한 타자화되곤 한다. 여성은 "여자는 집안일하느라 정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수준에 머무르는 성적, 정치적 인식에 의해 진보적이기는커녕 정치에 관심도 없는 반정치적인 객체로 타자화되고, 군소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연대와 통합을 통한 승리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일종의 반역자 취급당하곤 한다.
심지어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무소속 김소연 후보(득표율 0.05%)와 김순자 후보(0.15%) 때문에 표가 갈라져 문재인 후보(48%)가 박근혜 후보(51.6%)에게 패배했다는 근거 없는, 그리고 불가능한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20대와 여성, 군소정당 지지자 모두 일종의 정치적 소수자인데, 결국 이른바 'XX 개새끼론'은 그러한 정치적 소수자들에게 선거 패배의 책임을 돌리려는 동시에 자신들은 할 만큼 했다는 일종의 자위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우 질 나쁜 자위 말이다.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는 '투표심판론'정치학자들과 여론조사 기관 등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약 35% 선으로 지레짐작한다. 아무리 지지율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평균 약 30~40% 선의 지지율은 유지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숫자이기도 하고, 정치라는 것은 무릇 게임에 가까운 법이기에 과반을 넘어야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투표심판론'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또 투표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정권을 '심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느 곳에도 없다. 더군다나 야당과 투표심판론을 굳게 믿는 기성 지지자들이 이런 '꼰대질'만 하고 있는 이상은 더욱 그렇다. 오히려 그들 때문에 정치혐오나 탈정치화와 같은 참여의 문제가 생긴다면 모를까, 그것이 해소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 또한 권리다. 이를 두고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권리'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자신의 정치적 의사에 따라 투표를, 선거를 보이콧하는 것 또한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보이콧한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투표는 매우 훌륭한 정치 참여 수단이다. 실제로 투표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투표가 유일하고 전지전능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들 –예컨대 지금도 진행 중인 미국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운동, 3월 9일부터 시작된 프랑스 국영 철도(SNCF) 노동자들의 전면파업 등- 과 지금까지의 역사 또한 별로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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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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