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교과서로 수업을 듣는다, 미국에서

[서평] 조너선 코졸이 쓴 <야만적 불평등>

등록 2016.03.24 12:42수정 2016.03.2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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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학교 선택의 자유가 크게 보장되는 나라다. 고교 평준화 제도가 시행된 한국에 비해, 미국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고급 사립학교가 번창하고 있다. 부유한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기숙형 사립학교에 보내서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자유롭다.

고급 사립학교들은 학부모의 넉넉한 재정 지원과 다양한 혜택을 받아 양질의 학교로 거듭날 수 있다. 고급 사립학교의 학생들은 AP(Advanced Placement, 고등학생이 들을 수 있는,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심화과정) 강의를 듣고, 높은 연봉을 받는 교사들의 질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학부모와 지역의 자유 보장에 따라 이러한 현상은 정당화된다.


한편, 어떤 학생들은 창고에서 20년 된 교과서로 수업을 듣는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너무 위험하고, 학교 인근에서는 환경 폐기물 때문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한 학급의 학생수는 학생 각자가 책상이나 교과서를 이용하기엔 너무 많고, 수업 도구는 교사가 사비로 구입한다.

홍수가 나면 학교 전체가 수해를 입기도 한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대부분 비백인이다. 이들에게는 자유도 평등도 없는 듯하다.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교육 전문가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빈민가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기록한 것이 이 책 <야만적 불평등>이다.

학생의 94퍼센트가 비백인인 저소득층 지역 어빙턴에는 한 학교에 11학급이 교실이 없다. 어빙턴의 어느 학교에서 읽기를 가르치는 교사가 말한다. "저는 짐 보관소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음악교사가 말한다. "저는 창고에서 수업을 합니다." 또 다른 두 학급은 석탄 저장소를 개조한 곳에서 수업을 한다고 담당교사가 말한다. 생활지도 교사는 창고에서 학부모회의를 연다고 한다. 읽기 보충반 교사는 말한다. "저는 식기 보관실에서 수업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너무 힘드네요." - 본문에서

a  야만적 불평등, 조너선 코졸. 2010.

야만적 불평등, 조너선 코졸. 2010. ⓒ 문예 출판사

저자인 조너선 코졸은 교육전문가로, 미시시피, 뉴욕, 뉴저지 주 캠던, 워싱턴 D.C., 샌안토니오를 돌아다니면서 빈곤가의 학교를 조사했다. 그리고 그 학교의 처참한 현실과 불평등,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하는 선생들의 노고가 서글플 정도의 비극적인 결과와 구조적 문제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깊게 자리한 불평등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활동 이후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종 분리가 실행되고 있는 현실과 맞닥뜨린다.

저자가 방문한, 유색 인종이 등교하는 학교의 현실은 정말 처참하다. 책이 90년을 즈음하여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믿기 어렵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백인 거주지와 분리된 유색인종 거주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한다. 이런 지역에는 백인 거주지에 없는 다양한 폐기물 매립지가 존재한다.


일리노이 주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는 흑인 빈곤층 밀집 지역이다. 토양엔 납이 듬뿍 함유되어 있고, 병원도 일자리도 부족한 곳이다.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 고등학교 인근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겐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 정부는 지역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원을 거절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교사들이 근무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학교 교육은 악화된다.

'마틴 루터 킹' 학교에서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인권이 파괴되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체육관에 오수가 가득 차는 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학교 인근의 파이프에서는 유해 배기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빈민가의 공립 학교는 심지어 분필과 종이, 교과서까지 부족해서 도저히 정상적인 학습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체육 시간에는 강당에서 이론 수업이 진행되고 미술 시간에는 그림 그릴 도구가 없다. 부족한 체육 시설 때문에 학생들이 길거리 농구를 잘하게 되는 것은 서글픈 풍경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고통을 겪으며 졸업까지 버티는 학생은 전체 반도 안 되며, 졸업생의 성적 수준도 낮다. 낮은 성적은 이들 학교에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로 쓰인다.

부족한 교과서·교사·도구·시설·교실·모든 것
압도적인 불평등 속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이런 끔찍한 환경의 도심 학교들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고 싶은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도심이 아닌 인근 교외 지역에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지어진다. 교외 지역의 학교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외국어 공부를 추가적으로 배우고 졸업반 학생 대부분이 AP 과정을 수강한다. 교외 학교의 교사 연봉은 도심 학교에 몇 배에 달하고 교외 학교 학생들은 라틴어도 컴퓨터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격차와 성적은 경쟁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뉴욕 주 교육국은 '점수가 높다고 그 지역 교육구가 좋다거나 점수가 낮으니까 그 지역 교육구가 나쁘다는 판단'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격차가 학생의 성공이나 실패를 예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뉴욕 주 라이(Rye)의 교외 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자기도 지옥같은 학교에서 벗어나서 좋은 학교에 왔다며, 자신의 세금을 전에 살던 곳을 위해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가 지옥에서 벗어났으니 남은 어찌되든 상관없는 것이냐고 묻자 그 학생은 부모가 관심이 없으면 어차피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그들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나한테 무슨 보탬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인종 분리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저자는 1960년대 민권 운동 시기에 비해 인권 감수성이 크게 후퇴한 것을 절감한다.

어떻게 봐도 빈곤 지역 공립학교에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강한 반대 의견이 있다. 사실 돈은 교육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는 저널이 있고, 각 지역의 자율적인 재정 분배를 강조하며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교육계 인사들이 있다. 자신의 자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돈은 사실 교육에 중요하지 않다고 지원 거부를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더 솔직한 이들도 있다. 각 지역의 자율적인 재정 분배를 강조하며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고, 그냥 솔직하게 내가 가진 돈을 내 자식한테 쓰고 싶다고 말하는 학부모가 있다.

저자는, 어떤 미국 아이가 가난한 애팔래치아 지역의 백인으로 태어났든 부유한 텍사스에서 태어났든, 브롱크스의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났든 아이들은 모두 경이롭다고 말한다. 현재의 교육제도가 그들을 불필요하게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도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비행에 빠지게 되고, 절망의 분위기가 눈빛에서 배어나온다. 자유롭고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국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 평등을 목표로 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재정적 지원을 통해 이런 '야만적 불평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만적 불평등 - 미국의 공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2010


#야만적 불평등 #공교육 #공립학교 #인종 분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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