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여행
김동우
규정 속도를 지키며 방어운전·안전운전 모드를 유지했다. E11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오만까지 다이렉트로 연결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도상으로 말이다. 두바이의 널찍한 도로에 적응하자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간 미니버스에 너무 시달린 탓에 나만의 공간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운전하는 맛은 남달랐다.
두바이를 빠져나오자 '샤르자 국제공항'이 보였다. 북동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동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선 거였다. 30분을 헤맨 끝에 약간 둘러가는 고속도로를 다시 잡아탔다. 도로 양옆으로 끝없이 사막이 펼쳐졌다. 중간 중간 낙타들이 사막 한가운데 듬성듬성 나 있는 풀을 뜯고 있었다. 창문을 내리자 끓어오를 듯한 사막의 열기가 순식간에 에어컨 바람을 집어삼켰다.
오만 국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잠시 뒤 아랍에미리트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나왔다. 여권과 차량등록증을 내밀었다.
"렌터카?!""넵!""렌터카는 오만을 다녀와도 된다는 회사의 증빙서류가 있어야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서류라니요?""회사 직인이 들어가 있는 서류가 있어야 해요."'책임이 없다는 게 결국 이거였구나! 지금 이걸 어떻게 구하나. 된장.'난처함을 숨기지 못하자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 팩스로 서류를 받으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초조한 눈으로 렌터카 계약서류에서 회사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하지만 내겐 결정적으로 전화가 없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전화를 쓰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회사 전화번호로는 통화가 되질 않았다.
몇 번씩이나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연결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했다. 대략 난감이었다. 다시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는데 차량을 인수할 때 차량검사를 담당했던 직원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다시 이 번호로 전화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출입국사무소 전화기는 휴대폰 발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난감함의 연속이었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 앵벌이에 나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전화를 빌리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전화가 있는 사람들에게 한 통화만 하자고 부탁하길 네 차례. 어렵게 직원과 통화가 됐다.
"오만에 가려고 보니 회사 서류가 필요하다고 하네요?""나는 지금 밖이고, 지금은 런치타임이어서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요. 통화하고 싶으면 한 시간 뒤에 사무실로 해주세요."무슨 놈의 런치타임이 오후 2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인지 납득이 안됐다. 순간 울화가 치밀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불러주는 사무실 번호를 받아 적기 바빴다. 그런데 막상 받아 적은 번호는 서류에 적혀 있는 번호와 똑같았다.
한 시간을 기다린 뒤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도움으로 다시 전화를 시도했다. 회사 전화번호는 역시나 먹통이었다.
'젠장! 아 진짜!'또 한 번 휴대폰 앵벌이를 시작했다. 남자·여자·애·어른 할 거 없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면 보는 족족 부탁을 했다. 심지어는 청소를 하는 방글라데시 청년에게까지 한 통화만 쓰자며 애걸을 해야 했다. IT세계 최강국 코리아에서 온 휴대폰 없는 여행자의 암담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빌려 어렵사리 노만이란 직원과 통화를 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문제 있으면 우리 책임 없다고욧!""그건 알겠는데, 여기서 서류 한 장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까. 직인이 들어가 있는 서류 한 장만 보내주면 안 될까요?""매니저와 통화해 볼 테니 10분 뒤 다시 전화하세요."'이런 게맛살! 지금 어떻게 통화가 된 줄 알고 다시 전화하라 그래!'참고 있던 욕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오케이"라고 나불대고 있었다. 약자의 비애였다. 10분 뒤 어렵사리 다시 통화가 됐다. 그는 "그런 서류가 없다"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구걸한 휴대폰으로 길게 통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 내가 돈 좀 아끼고, 몸 좀 편하겠다고 쥐꼬리만한 회사에서 렌트한 죄다! 100m만 가면 오만인데 못 넘어가는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그런데 오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내 두 발로 걸어가면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는 거였다. 게다가 한국인은 무비자 입국 아닌가. 여길 넘어가는 차들은 거의 다 카삽으로 가는 차들이기도 했다. 그냥 돌아간다는 건 무의미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걸어가는 건 언제든 오케이라고 했다.
'걷자, 걸어. 누구 하나 태워주는 사람이 없겠어?'수속을 하고 배낭을 챙겨 오만 출입국사무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미 오만 땅이었다. 오만 출입국사무소에 닿기 직전이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나온 지 몇 분 만에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살인적인 중동의 열기는 삽시간에 날 태워죽일 것만 같았다. 여행에 대한 투지도 좋지만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존욕이 발동했다. 순식간에 오만 여행에 대한 열정은 재가 돼 타들어 가고 있었다. 렌터카 회사를 뒤집어 놓고 싶었지만 살아 돌아가야 싸울 수 있었다. 뒤도 안 돌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두바이 여행
김동우
두바이를 출발한 지 8시간 만에 다시 숙소의 안락한 에어컨 바람 앞에 섰다. 그리곤 이를 갈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렌터카회사를 찾았다. 나는 내가 극도로 흥분해야 영어가 잘되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여행 깨알정보 |
두바이에서 오만 여행을 계획했다면 버스를 타고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로 바로 갈 수 있다. 오만은 다행히 한국인에게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무스카트 지역에선 재래시장과 돌고래 투어 및 스노쿨링, 알 알람 왕궁, 오만 박물관, 그랜드 모스크 등이 볼 만하다. 또 수르 지역의 거북이 산란장, 외디 계곡, 쟈발 샴스 정상(3000m), 쟈발 악다르, 와히바 사막 등이 가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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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찍고, 쓰고,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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