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과 오페라 가르니에를 일직선으로 잇는 도로 양 옆에는 전형적인 오스만 건축 양식의 건물이 즐비하다.
김윤주
파리가 유난히 인상적인 이유는 도시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청회색 아연 지붕과 베이지색 벽으로 이루어진 건물들 때문이다. 유사한 형태와 색상의 건물이 일정한 형식으로 줄맞춰 서 있는 모습은 균형감을 주는데다 높이마저 6~7층 정도로 통일되어 위협적이지 않다. 지붕과 벽면의 색과 형태와 질감 등 건물 외관이 하나같이 비슷한데다 창문과 발코니는 정교한 청동 빛 철제 장식으로 둘러쳐 있다. 밤이면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지며 끝 모를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확산해 가는 여러 개의 대로, 마치 베르사유 궁전까지도 단숨에 닿을 것처럼 시원스레 뻗은 넓은 도로, 그 길 양편에 늘어서 초록빛 물결을 이루고 있는 키 큰 가로수와 잘 정돈된 인도, 이제 그만 쉬고 싶다 싶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작은 정원과 광장, 회색빛 도시에 산소를 공급하는 넓고 푸른 공원들, 청회색 아연 지붕과 베이지색 벽, 청동 발코니 장식이 조화로운 적당한 높이의 건물들과 가로등.
파리를 특별하게 하는 이 도시 풍경들은 실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구축된 셈이다. 대부분이 쿠데타로 세워진 제2제정기의 산물이다. 당시 시민들과 지식인들의 반대와 저항은 결사적이었다. 수십 년간 끊임없이 파헤쳐지고 헐어내리는 공사판의 소음과 먼지와 피로를 견뎌내며 도시 빈민과 시민들은 깊은 우울을 경험해야 했다. 막대한 공사비를 들인 오스만의 대대적인 도시 정비 사업 이후로 파리는 문화와 예술이 만개하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를 맞이하며, 해마다 8천만 명이 프랑스를 찾고 그중 3천만 명이 파리로 몰려든다.
수많은 상점과 공연장, 전시관 등 상업적이고 예술적인 화려한 건물들은 유서 깊은 건물들과 도시 빈민을 모조리 몰아내고 그들의 궁벽한 삶의 터전을 죄다 헐어버린 결과이다. 드넓게 뻗어나가는 시원스런 도로는 이야기를 품고 있던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부숴 버린 결과이며 더욱이 바리케이드를 치기 어렵도록 설계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시민 혁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진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움으로 예찬되고 자유와 혁명, 사랑과 낭만으로 기억되는 도시 파리는 정작 그렇게 형성되었다. 아이러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공유하기
여행자들이 감탄하는 도시, 파리 탄생의 뒷이야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