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유권자들은 왜 국민의당을 선택했을까

[주장] 호남의 국민의당 선택,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등록 2016.04.15 14:20수정 2016.04.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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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에 있는 다수의 유권자들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광주와 전라도를 통틀어 호남의 28개 지역구 중 5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호남의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거의 몰락하고 말았다.

대다수 호남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선 국민의당이 어떤 정당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헌에 따르면 이 정당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보장되고 정의롭고 부강한 민주복지국가를 지향하며 성숙한 당내 민주화와 풀뿌리 분권정당을 구현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한 모두 잘 사는 대한민국, 자유롭고 공정한 대한민국, 모두를 키우며 돌보는 대한민국, 안전하고 청정한 대한민국, 평화롭고 하나 되는 통일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총선 공약으로는 공공보건의료 확충, 후납형 청년구직수당 도입, 중소기업 사회복무제, 기초생활수급자 및 국민연금수급자 기초 연금 감액 폐지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다수 호남 유권자가 국민의당을 선택한 이유를 '당헌에 규정된 목적'이나 '총선 공약 사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선택의 이유가 "민주당 기득권 체제의 청산", 혹은 "친문세력 심판"이나 "호남정치의 복원"에 있다는 주장이 더욱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선거판을 보았을 때 국민의당은 호남 외에 의석수를 배출한 지역구가 단 2곳에 불과하다. 만약 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다발적으로 당선된 사례가 있었다면 다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민주당 기득권 체제의 청산, 친문세력 심판, 호남정치의 복원. 국민의당을 선택하게 만든 이 세 가지 이유는 각기 다른 배경과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인 손익계산이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 이유라는 점이다. 투표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공약한 후보나 정당에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러나 종종 그렇듯이 사람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설 때가 있다.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적어도 호남 유권자들의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손익계산이 작용한 결과하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유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이유로 국민의당에 투표했다고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세 가지 이유는 모두 국민의당의 당선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이다. 목적은 그것에 도달하게 된 원인이 있다. '민주당 기득권 체제의 청산'이라는 목적은 '민주당이 호남을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만 이용한다.'라는 인식에서, '친문세력 심판'이라는 목적은 '친문세력이 호남을 차별하고 소외시켰다.'라는 인식에서,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목적은 '호남정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글에서 호남이 국민의당에 투표한 이유로 꼽히는, 적어도 내가 들어본 적이 있는 세 가지 주장을 놓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겠다.


친문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투표했다

대다수 호남 지역민들이 국민의당을 선택한 이유가 '친문세력 심판'에 있다는 주장은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친문세력 심판"은 유권자가 국민의당을 선택한 '목적'이라기보다 특정 세력에 가해지는 '정치적 공격'에 가깝다. "친문세력 심판"은 국민의당이 창당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주장이다. 그 이전에는 반문·비노세력이 친노·친문세력을 견제할 때 썼던 정치용어로서 '친노패권주의'나 '영남패권주의'라는 이름으로 언론과 반문·비노세력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어왔다.

내가 이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것이 순수하게 친문세력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호남 지역에 출마한 더불어 민주당의 후보가 모두 친문세력이었다면 이 주장은 유효하다. 그러나 호남 지역에 출마한 후보 중에서 친문세력이 있었을 수는 있어도, 모두가 친문세력은 아니었다고 본다. 문재인 전 대표와 비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친문세력'으로 간주하는 '인재영입 인사'들 중 호남 지역에 출마한 사람은 하정열, 박희승, 양향자 후보 3명이다. 대부분 인재영입 인사는 수도권을 비롯한 타 지역에 출마했다.

잘 생각해보면 '친문세력'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광주에 출마하는 전략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싸늘한 호남민심'을 담은 신문기사와 여론조사를 보고 광주에 '전략적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광주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친문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건도 있었다. 광주 지역구에 출마한 어떤 후보는 삼보일배를 감행하면서 친문세력의 '최고봉'인 문재인 전 대표의 차기 대선 불출마를 요구했다. 광주에 친문패권이 존재한다면 그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 '강철 심장을 가진' 후보는 큰 표차이로 낙선하고 말았다.

'친문세력 심판'은 주로 민주당의 당내 계파싸움에 동원되는 논리이다. 국민의당과 더불어 민주당은 서로 다른 정당이다. 만약 친문세력을 심판하기 위해서 국민의당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하나의 정당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과연 유권자들이 국민의당과 더불어 민주당을 하나의 정당으로 판단하고 국민의당을 선택했을까? 당대당 싸움을 계파싸움으로 볼 수는 없기에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더불어 민주당 탈당계열 인사가 호남에서 국민의당의 이름으로 당선된 사례를 통해서 "친문세력 심판론"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으로는 더불어 민주당과 아무 관련이 없는 신인 후보들이 당선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친문세력 심판'은 더불어 민주당 내 계파싸움의 명분이 될 수 있어도 대다수 유권자의 행위를 유발할만한 목적이 되기는 부족하다. 물론 이 주장이 대다수가 아닌 일부 유권자를 움직였을 수는 있다. 다만 국민의당이 압승한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친문세력 심판론'에 동조한 유권자는 아마도 문재인 전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유권자가 국민의당을 선택했다면 그 이유는 친문세력을 심판한다기보다 문재인 전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의 입지를 좁히기 위해서 다른 정당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이 대목에서 "인간 문재인은 좋지만 정치인 문재인은 싫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겠다. 나는 그것을 "문재인은 대통령감이 못 된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호남정치의 복원을 위해 투표했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이유가 '호남정치의 복원'에 있다는 주장은 호남 지역민들이 국민의당에 투표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꽤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호남정치'는 무엇일까?"라는 문제다. '호남정치'는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호남정치를 호남에 가해지는 한국사회의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남주도의 정권교체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로 향하는 투쟁정신이라는 견해도 있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일부 유권자들은 이러한 호남정치에 대한 소망을 갖고 투표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호남정치의 '복원'일까? 복원은 "원래대로 회복함"이라는 의미다. 원래 호남정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원래 호남정치'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의 호남정치'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유일한 호남출신 대통령이다. 동시에 민주화운동가이자 카리스마 있는 야당 지도자였다. 적어도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호남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남정치의 복원'을 목적으로 국민의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군부독재와 치열하게 싸우던 김대중 총재와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향수를 갖고 있는 보수적인 50·60대 연령층의 유권자일 확률이 높다.

호남정치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호남정치 그 자체는 지역에 한정돼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실 비호남지역 유권자들이 볼 때 호남정치라는 표현은 지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호남 지역민을 보고 지역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호남정치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기존 민주당 기득권 체제의 청산을 위해 투표했다

이 주장은 '호남정치의 복원'과 더불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존재한다.

지금은 영남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했으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했어도 더불어 민주당은 호남의 여당이었다.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호남 의석수를 휩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당이 아닌 정당이 호남 의석수를 쓸어갔다."는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호남 내에서 민주당 기득권 체제가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호남 의석을 휩쓴 정당에서 출마한 인물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당 중심의 기득권은 무너졌지만 인물 중심의 기득권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 세력'과 더불어 민주당에서 탈당한 '비주류', 그 외 무당 층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호남지역에 출마한 국민의당 후보 중 몇몇은 더불어 민주당에 있을 때 호남지역에 터를 잡고 있거나 잡았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천정배 의원, 박지원 의원, 권은희 의원, 주승용 의원, 박주선 의원, 정동영 당선인은 한 때 더불어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국민의당의 이름으로 재선에 성공하거나 당선되었다. 이러다보니 당은 바뀌었지만 인물이 바뀌지 않은 경우가 생겼다. '기득권 청산'이라고 말하기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들이 당선됨으로써 "친문세력 심판론"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바뀐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민주당 기득권 체제가 무너진 것은 맞지만 당만 교체되고 인물이 바뀌지 않은 곳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옷만 갈아입은" 곳이 있는 것이다. 그런 지역은 '기득권 청산'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지만, 민주당이 호남 내에서 누려왔던 기득권 체제가 무너진 것만큼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자라왔던 기존의 기득권 세력 자체를 무너트리려 했다면 위에 언급한 후보들은 대다수가 낙선했을 것이다. 순수하게 '호남 내 민주당의 기득권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국민의당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성공한 셈이다.
#총선 #국민의당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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