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제방 길추억에 젖어 뒷걸음으로 제방 길을 걷다가 제방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는 않아서 격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했다.
지요하
제방 아래로 떨어졌다. 한 바퀴 구른 다음 갯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갯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있었다. 나는 격심한 통증에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갯바닥에 간신히 웅크리고 앉아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신음을 삼켰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찢어지거나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았다. 왼손이 돌에 긁혀 곳곳에서 피가 흐를 뿐 머리도 다치지 않았고 얼굴도 긁히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의 양쪽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와 물병은 튕겨 나와 멀찍이 달아나버렸는데, 내 손의 묵주는 그대로 있었다.
나는 묵주 쥔 손으로 성호를 긋고, 감사기도를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 기도를 여러 번 반복했다. 잠시 후 몸을 일으켜보았다. 왼쪽 다리는 심한 통증으로 걷기가 힘들었지만 오른쪽 다리는 멀쩡해서 오른쪽 다리에 의지해서 가만가만 걸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물병과 휴대전화를 주워 다시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간신히 제방을 기어오른 다음 비교적 평탄한 길을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평소보다 곱은 걸려 이윽고 승용차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아내의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일단 차에 올라 몰고 가면서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면 지금 가는 중이라고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승용차 문을 열려고 하니, 내 주머니에 리모컨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난감했다. 사고 지점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병과 스마트폰을 주우면서 승용차 리모컨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내 실책을 한탄하면서 어찌할까 생각하는데 휴대전화 신호음이 울렸다. 아내의 전화였다.
사고 내용을 고하니 아내는 자기 가방 안에 리모컨이 또 하나 있다며 곧 오겠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간신히 땅바닥에 앉아 아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저만치에서 뛰다시피 하며 오는 게 아닌가.
아내는 동료 여교사의 차를 타고 장명수로 오다가 갯물 수로 옆길 두 개 중 포장이 안 된 길로 오다가 중간에 차가 좁은 길에 갇힌 탓에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고 했다. 장명수에 한두 번 온 게 아닌데 정신이 없다보니 동료 여교사에게 길을 잘못 안내해서 낭패를 끼치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일단 차에 오른 다음 아내의 동료 여교사의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오른쪽 다리가 멀쩡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동료 여교사의 차는 바로 옆의 다리를 이용하면 돌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차를 돌려주려고 했으나, 동료 여교사는 전화를 받은 남편이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각이어서 내 리모컨이 물에 잠길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 관리사무소까지는 차로 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아내는 재빨리 갯바위 쪽으로 돌아가더니 휘어진 제방 아래로 내려가 쉽게 리모컨을 찾아들었다. 바닷물은 아직 저만치에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성호를 그으며 감사기도를 했다.
성당에서 저혈당 증세를 겪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