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의 거짓말(噓)①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제국의 위안부, p67, 박유하)라는
사진설명이 붙어있다.
② 정대협 사무실 앞에 일본 우익이 붙인 포스터에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거짓말(噓)을 그
만해라"고 쓰여있다.
③ 날조 종군위안부전-강제연행은 거짓말(噓)이다.
④ 날조, 종군위안부전 포스터. 이 사진은 제국의 위안부 33쪽에 나오고, 우측 여자는 다시
뒤표지에 실루엣 처리로 나온다. 박유하가 말하는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의 ‘동지적인
관계’를 상징한다.
⑤ 저는 조선인에 의해 위안부(매춘부)가 되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1차 책임을 조선인 업자에게 물었다.
최진섭
일본판 제1부 제1장 5절에는 한국판에 나오지 않는 <식민지의 거짓말>(植民地の<嘘>)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위안부를 매춘의 틀에서 파악하고 있는 박유하는 식민지조선의 업자, 가족, 딸 모두가 거짓말에 가담하게 되는데, "거기에 개재된 거짓말은 위안부가 될 운명의 여성들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 나아가 가족들을 그 구조로 들어서기 쉽게 하는, 무의식 속에서 공모한 것 <거짓말>이기도 했다"라고 쓴다.
그 거짓말은 종국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의 민족적인 차별을 정시(正視)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민족의 거짓말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한 여성학자는 '일본어판'에만 있는 '민족의 거짓말(民族の嘘)'이란 표현을 보고 "이것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주의적 인식-불온한 사기집단-을 교묘히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일본 우익의 위안부 관련 집회에는 '거짓말'(lie, 噓), '날조'(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거짓으로 꾸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일본 우익단체는 <제국의 위안부>에 나오는 사진과 박유하 교수가 고안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을 적절히 배합해서 선전물을 만든다고 한다. 그들이 전단지에 넣기 좋아하고, 강변하는 핵심 주장은 이렇다.
-종군위안부는 돈 벌러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다.-강제연행은 날조다.-성노예는 거짓말이다.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 집필 의도가 한일의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책의 핵심 요지와 일본 우익의 핵심 슬로건이 거의 일치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이는 360쪽에 달하는 본문 내용과 34곳의 삭제 문장을 살펴본 뒤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감이 온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 자체가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덮을 목적으로 고안된 것 같다. 그 동안의 '위안부' 관련 책처럼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지 않고 '제국의 위안부'라고 제목을 단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화해를 위해 '신친일파'를 자처하는 박유하의 몇 가지 '간계'가 엿보인다.
첫째,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은 조선인 위안부도 "어디까지나 '준일본인'으로서 제국의 일원이었"(60쪽)기에 일본군과 사랑도 나누는 '동지적 관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국가의 세력확장)의 문제로 다루었"음을 강조한다. 일본 천황, 일본군국주의 책임 문제가 제국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이름으로 흐려진다.
세 번째, "아시아의 불행은 서양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것"(298쪽)이라며 전쟁범죄, '위안부' 문제의 근원적인 책임을 일본제국이 아닌 서양제국에게 떠넘긴다.
결국,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은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로 만들어 일본군의 범죄를 면죄해 주는데 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안부' (성노예) 문제는 단지 일본만의 책임이 아니며 일본보다 일찍 제국주의 확장을 한 서양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초점을 흐리게 한다. 이처럼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 제목은 일본의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책임을 희석화, 추상화하고, 축소하는 데 활용된다.
일본 우익과 리버럴은 왜 <제국의 위안부>에 찬사를 보낼까<제국의 위안부>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본의 우익뿐만 아니라 역사수정주의 성향을 보이는 일본 리버럴 지식인의 욕망, 요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심도 깊게 비판해온 정영환 준교수(메이지가쿠인대학)는 "일본의 논단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예찬하는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이 일본 언론계에서 이토록 폭넓게 예찬 받은 것은 박유하씨가 일본사회의 지식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전전의 대일본제국의 책임 부정과 전후사의 수정이라는 두 가지 역사수정주의에 호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라는 것은 일본의 지식인, 언론계의 문제인 것이다."(정영환)이런 판단에 근거해 볼 때 일본의 '제국의 위안부 현상'은 의도적이고 정략적으로 조장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단지 박유하라는 여류작가, 여성교수 한 명의 독특한 해석에 지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와 맥을 같이 하기에 극찬해마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서 성행하는 역사수정주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증언과 자료를 제멋대로 짜깁기해서 조선인 '위안부' 상을 조작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과 정부의 책임, 나아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까지 부정, 왜곡"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한다(<Q&A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 서문 참조)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제국의 위안부>를 경계해야 할 주요한 이유이고 '소모적' 논쟁을 감내해야 하는 까닭이다. '화해'의 담론으로 포장하고, 표현의 자유로 띠를 두르고, 사상 검열 당한 피해자 흉내를 내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국의 위안부'의 결정적 문제는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식민지 피해자가 아니고 제국의 눈,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박유하 교수의 태도에 대해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에서 이재승 교수는 "박 교수는 근본적으로 침략과 전쟁을 억압받는 여성이나 주권을 박탈당한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제국의 시선에서 제국의 변호사로서 다루고 있다"고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당신은 누구 편인가? 엄연히 전쟁범죄 피해자가 실재하는 문제에서 '당신은 누구편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질문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의 문제, 인권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글 '제국의 변호인'에서 손종업 교수가 박유하 교수에게 던진 말을 되새겨 본다.
"박유하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편익을 추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의 책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학문은 '해결책'이 아니라 '진실' 또는 '사실'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과 맞서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뿌리와이파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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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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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를 비판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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