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머니가 가져온 빵은 '눈물의 열매'였죠"

가족편지 모음집 <아름다운 동행 사랑의 노래>에 담긴 애틋한 사연들

등록 2016.05.02 10:22수정 2016.05.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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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태평양 건너에 사는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표를 붙여야 하는 편지는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문자와 부호가 뒤섞인 문구들이 소통의 수단이 되어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를 사라지는 것들의 대열로 몰아넣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성이 담긴 편지 한 통이 더없이 소중하고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김진성, 채정순 부부 가족사진(2009년)
김진성, 채정순 부부 가족사진(2009년) 김관영

가정의 달, 5월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책자 한 권을 소개한다. 군산시 회현면에 사는 김진성(82), 채정순(82) 부부의 아들(여섯), 며느리(여섯), 손자·손녀(열넷) 등 30명이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집'(<아름다운 동행 사랑의 노래>)이다. 두께는 표지까지 84쪽. 지난 2009년 부모님의 결혼 50주년(금혼식)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6형제 부부가 상의 끝에 만들었다 한다.

"깻잎김치, 파김치, 호박, 오이, 시금치, 깨소금, 들기름, 심지어는 감이 열릴 때 즈음엔 감까지도 어느 누구 하나 서운할까 빠짐없이 챙겨주시는 분주한 사랑의 손길을 머금고 그렇게 가족으로 자랐습니다. 명절 끝자락이면 우유병에 양말까지 찾아주시며 '잘 챙겼냐? 잊지 말고 다 넣어라' 하시며 확인 또 확인하심에 불구하고 꼭 한 두 가지씩 흘리고 오면 '그럴 줄 알았다' 하셨지요." - 다섯째 며느리(목영숙) 편지 중에서

가족편지를 모아 책자로 만들자는 의견을 처음 제시한 아들은 다섯째인 김관영(47) 의원. 그는 당시 '김앤장' 로펌에서 인수합병 및 조세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고시 3관왕'(공인회계사, 행정고시, 사법고시) 출신인 그는 19대 총선(2012)에 이어 지난 4·13총선에서도 전북 군산지역 선거구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 재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 어떤 대통령보다 위대하게 보였던 부모님

 김진성, 채정순 부부(편지모음집 캡처)
김진성, 채정순 부부(편지모음집 캡처) 조종안

가족편지 모음집은 둘째 아들(김병철)의 부모님 약력 소개로 시작된다. 병철씨는 첫머리에 "저희는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심, 효 실천, 성실한 삶과 근면 정신, 형제간 우애, 항상 긍정적인 감사의 생활 등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라면서 "어머니·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신앙의 지표이자 삶의 등대 역할을 해오셨다"라고 소개한다.


"두 분(김진성·채정순)은 젊음을 자녀들을 위해 너무도 희생하셨습니다. (줄임) 낮에는 농사일로 힘을 다 빼시고, 저녁에는 밭일로 밤새는 줄 모르고 채소를 준비하여 군산역 전장에 넘기시고, 그것도 부족하여 어떤 때는 두 번씩 시장에 가시곤 하셨습니다.

주위 분들에게 인정도 받고 많은 상(봉사상, 효부상)도 받으셨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리라 저희들은 확신합니다. 저는 이 글을 준비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순간순간 돌이키면 너무도 기적 같고, 감사하고 미안하기에 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형제 모두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저희 형제들을 잘 길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집안 행사 때 부모 약력 소개는 큰아들이나 맏손자가 하는 게 통례인데, 둘째가 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관영 의원 설명에 따르면 병철씨가 어렵게 공고(工高)를 졸업하고 직장을 따라 객지로 떠돌면서 고생한 만큼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도 각별했고,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아무런 이견 없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단다.

첫째아들(김병준)은 "저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준 부모님이 너무도 멋있고, 자랑스럽다, 그 어떤 대통령보다 위대하게 보인다"라며 "어린 시절 모내기하고 저녁 늦게 돌아오신 어머니가 주는 빵과 눈깔사탕을 받아먹는 게 마냥 좋아 어머니를 기다렸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하다"라고 말한다. 그때 어머니가 가져온 빵과 사탕은 허리가 부러지게 일하면서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지 않는 사랑으로 뭉친 '눈물의 열매'였다는 것.

잔잔한 감동 자아내는 가족편지 모음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깨알같이 적은 편지와 '축하의 글'(금혼식 주인공 동생, 동서들 편지) 중에서 눈길을 끄는 몇 대목을 한곳에 모았다.

 김병준·서혜원 부부(첫째) 가족사진(편지모음집 캠처)
김병준·서혜원 부부(첫째) 가족사진(편지모음집 캠처) 조종안

첫째 며느리(서혜원) : "결혼 초 아버님 어머님께 몇 번의 편지를 드린 후 참으로 오랜만에 두 분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여 편지를 드리려 하니 어딘지 어색하고 그동안 자주 쓰지 않아 미숙한 글솜씨가 그대로 드러나 다소 부끄럽습니다. 유리창 넘어 잠실대교 아래로 흐르는 한강물을 보니, 아버님 어머님이 살아오신 인고의 세월에 비하면 짧지만 제가 두 분의 딸이 되어 보낸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줄임)

그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도련님들이 하나둘 장가를 가서 믿음 좋고 선한 동서들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동서들이 생길 때마다 힘든 일이 줄어들었고, 집안의 대소사를 위해 항상 앞장서서 참여해주는 서방님과 동서들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모일 때마다 기대감을 갖고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 때문이었습니다. 며느리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울 여건을 허락해주신 덕분에 저희들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셋째 아들(손녀 김예진) : "명절 때마다 시골에 가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큰아빠, 작은아빠, 큰엄마, 작은 엄마, 그리고 사촌들까지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뛰어다니며 즐겁게 노는 게 정말 행복해요. 다른 친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도 많고 우리 가족처럼 그렇게 많지도 않거든요. 저에겐 가족이 많은 게 자랑거리도 되고 가족과의 만남이 항상 기대가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신 게 저에게 얼마나 큰 감사고 행복인지 몰라요. 할머니, 할아버지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김문영·박미라 부부(넷째) 가족사진(편지모음집 캡처)
김문영·박미라 부부(넷째) 가족사진(편지모음집 캡처) 조종안

넷째 며느리(박미라) : "어머님 해피 버스데이, 그리고 결혼 5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내년엔 더욱더 예뻐진 모습으로 51주년을 맞이하게요. 그리고 이 못난 며느리 위해 기도해 주심 늘 감사드리고 있는 거 아시죠? 살 좀 빠지게 해달라고 기도 좀 더 해주셔요. 제 기도는 안 듣네요. 어머님 아버님 반절만큼만 자식농사도 잘 짓고, 어머님 아버님 반절만큼만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어머님 아버님, 감기 조심하시구요. 존경을 듬뿍 담고···."

 김관영·목영숙 부부(다섯째) 가족사진
김관영·목영숙 부부(다섯째) 가족사진 김관영

다섯째 아들(김관영) : "부모님 잘 지내셨는지요. 올해(2009) 초에 아버님의 위암 진단으로 온 가족들이 걱정하던 생각이 납니다. 금혼식을 예약하고 진행하던 올 2월 초, 위암임을 확인하였던 시기에는 '아 정말 잘못하면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다행히도 위암 초기였고, 수술도 잘 돼 이렇게 영광스러운 금혼식을 맞이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다섯살 때 어머니가 우리 집 마당에서 홀태로 나락을 훑다가 애(아기)가 나올 것 같다면서, 할머니 방으로 애를 낳으러 들어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몇 시간 후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기가 바로 동생 '형완'이지요. 이렇듯 어머니는 일하는 순간들과 저희 자녀를 낳는 것을 혼동하시면서 사실 정도로 삶에 열중이었고, 어깨에 드리워진 무거운 삶의 짐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하셨던 것이지요."

막내 며느리(김희선) : "제가 의영이 낳고 모유 수유하면서 찾아뵈었을 때 돼지족이 모유가 잘 나오게 한다고 사 오셔서 어머님께서 고아주시고 한 그릇 마시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님의 말 없으시면서 마음 써 주시는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번 먹고 나서 어머님께서 제게 나머지 한 번 더 끓이는 일을 맡기셨는데 제가 깜빡하고 태운 바람에 얼마나 죄송했는지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가족 수가 많아 단체로 움직일 일이 많은데 시간 개념이 부족해서 늘 늦는 저에게 꾸지람을 하시는 어머님께 마음이 상할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의 삶을 살면서 어머님께서 하시는 꾸지람이 저를 딸같이 여기시는 어머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막내 동서(윤금순) 축하글 :  "매사에 긍정적인 형님(채정순)을 여장부로 칭하고 싶네요. 형님 기억나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입덧이 너무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고구마를 삶아서 보내주신 일을요. 어쩌면 그리도 자상하시고 친정어머니 같으신지요. 제가 맹장 수술을 하고 퇴원했을 때 보신탕을 끓여서 보내주신 일, 큰 아주버님(김진성)께서 들고 오셨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줄임)

자식 6명 교육시키기도 힘드실 텐데. 시장에서 오이 팔아 오신 돈으로 파마하라며 1만 원을 기저귀가방에 넣어주신 자상하신 모습. 그때 큰집 대나무 장독대로 가서 눈시울이 뜨거웠답니다. 형님은 무조건적 사랑, 우물처럼 메마르지 않는 자꾸만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실 텐데 신앙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신 형님을 존경합니다.

말씀은 없으셔도 우리 집안의 기둥이시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신 시숙님(김진성) 저희 식구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 보답해드리지 못했는데···. 심려만 끼쳐드리고 잘사는 모습 한 번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시숙님 죄송하고요. 부족하지만 기도드릴게요. 강건하세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게요."

'가정의 달'을 맞아 편지 한 통 써보는 것도 좋을 듯

아버지들은 직장에 매달리고, 어머니들은 자녀들 공부 채근하기에 바쁘고 아이들은 과외와 시험에 쫓기다 보니 서너 명 가족이 오붓한 대화의 시간조차 갖기 어려운 요즘. 비록 서툴고 미흡한 문구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지만,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에피소드와 애틋한 사연들이 잔잔한 은빛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5월은 노동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등이 들어 있어 '가정의 달'로도 불린다. 부모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형제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달이기도 하다. 입양의 날(11일), 성년의 날(16일), 부부의 날(21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인데, 그 누군가에게 정성이 담긴 편지 한 통쯤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친지 편지를 자그만 책자로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와 매거진군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모 #편지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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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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