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영·목영숙 부부(다섯째) 가족사진
김관영
다섯째 아들(김관영) : "부모님 잘 지내셨는지요. 올해(2009) 초에 아버님의 위암 진단으로 온 가족들이 걱정하던 생각이 납니다. 금혼식을 예약하고 진행하던 올 2월 초, 위암임을 확인하였던 시기에는 '아 정말 잘못하면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다행히도 위암 초기였고, 수술도 잘 돼 이렇게 영광스러운 금혼식을 맞이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다섯살 때 어머니가 우리 집 마당에서 홀태로 나락을 훑다가 애(아기)가 나올 것 같다면서, 할머니 방으로 애를 낳으러 들어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몇 시간 후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기가 바로 동생 '형완'이지요. 이렇듯 어머니는 일하는 순간들과 저희 자녀를 낳는 것을 혼동하시면서 사실 정도로 삶에 열중이었고, 어깨에 드리워진 무거운 삶의 짐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하셨던 것이지요."
막내 며느리(김희선) : "제가 의영이 낳고 모유 수유하면서 찾아뵈었을 때 돼지족이 모유가 잘 나오게 한다고 사 오셔서 어머님께서 고아주시고 한 그릇 마시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님의 말 없으시면서 마음 써 주시는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번 먹고 나서 어머님께서 제게 나머지 한 번 더 끓이는 일을 맡기셨는데 제가 깜빡하고 태운 바람에 얼마나 죄송했는지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가족 수가 많아 단체로 움직일 일이 많은데 시간 개념이 부족해서 늘 늦는 저에게 꾸지람을 하시는 어머님께 마음이 상할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의 삶을 살면서 어머님께서 하시는 꾸지람이 저를 딸같이 여기시는 어머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막내 동서(윤금순) 축하글 : "매사에 긍정적인 형님(채정순)을 여장부로 칭하고 싶네요. 형님 기억나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입덧이 너무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고구마를 삶아서 보내주신 일을요. 어쩌면 그리도 자상하시고 친정어머니 같으신지요. 제가 맹장 수술을 하고 퇴원했을 때 보신탕을 끓여서 보내주신 일, 큰 아주버님(김진성)께서 들고 오셨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줄임)
자식 6명 교육시키기도 힘드실 텐데. 시장에서 오이 팔아 오신 돈으로 파마하라며 1만 원을 기저귀가방에 넣어주신 자상하신 모습. 그때 큰집 대나무 장독대로 가서 눈시울이 뜨거웠답니다. 형님은 무조건적 사랑, 우물처럼 메마르지 않는 자꾸만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실 텐데 신앙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신 형님을 존경합니다.
말씀은 없으셔도 우리 집안의 기둥이시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신 시숙님(김진성) 저희 식구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 보답해드리지 못했는데···. 심려만 끼쳐드리고 잘사는 모습 한 번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시숙님 죄송하고요. 부족하지만 기도드릴게요. 강건하세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게요."
'가정의 달'을 맞아 편지 한 통 써보는 것도 좋을 듯아버지들은 직장에 매달리고, 어머니들은 자녀들 공부 채근하기에 바쁘고 아이들은 과외와 시험에 쫓기다 보니 서너 명 가족이 오붓한 대화의 시간조차 갖기 어려운 요즘. 비록 서툴고 미흡한 문구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지만,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에피소드와 애틋한 사연들이 잔잔한 은빛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5월은 노동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등이 들어 있어 '가정의 달'로도 불린다. 부모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형제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달이기도 하다. 입양의 날(11일), 성년의 날(16일), 부부의 날(21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인데, 그 누군가에게 정성이 담긴 편지 한 통쯤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친지 편지를 자그만 책자로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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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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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머니가 가져온 빵은 '눈물의 열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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