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철의 <사진으로 보는 해방 전 부안풍경>(2016, 밝)
장호철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내력들은 칠십몇 년의 시간을 거슬러가 우리를 해방 공간으로 데려다 준다. 누구나 한번 미소로 스쳐갈 사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켜는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특정 시기의 정지된 시간과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적 공백을 환기해 준다. 그게 사진이 가진 힘일까.
이 아름다운 사진은 지난 3월 초순에 간행된 <사진으로 보는 해방 전 부안 풍경>(아래 <부안풍경>)에 실려 있다. <부안풍경>은 전북 부안의 부안역사문화연구소에서 매년 두 차례 펴내는 잡지 <부안이야기>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해 온 정재철 선생의 노작이다.
동시에 이 책은 부안역사문화연구소가 천착해 온 지역사 연구의 첫 결실이다. 이 책은 '부안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자 애써 온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모은 '부안역사문화연구소총서' 제1권인 것이다. 부제 '시골 역사 선생의 지역사 찾기'는 이 책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 주고 있다(관련 기사 :
지자체 지원 거절하는 잡지, 다 이유가 있다).
부안역사문화연구소의 '지역사 연구'의 성과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지역사' 연구는 '1970년대 이후 중앙과 지배층 중심의 역사서술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시작'(삼척대 배재홍)되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졌지만 '지역사'라는 용어의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데서 보듯 그것은 아직 '한국사 연구의 한 분야'로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지역사 연구는 흔히 '향토사가', '향토사학자' 등으로 불리어 온 비전문적인 연구자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지역사 연구는 전문 역사학자들도 참여하면서 객관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부안역사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부안역사문화연구총서는 이러한 지역사 연구의 구체적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역사교사로서 지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찾지 못한 데서 오는 고민과 성찰을 고백한다. 그의 화두는 언제나 '부안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물음이었고 지역 어른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자료를 모으는 일을 통해서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책 <부안풍경>은 그가 찾은 답의 일부인 셈이다.
<부안풍경>은 제목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의 근·현대 지역생활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지은이의 말대로 "부안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역사와 시대의 부름을 피하지 않고 상처를 뒤집어쓴 채 맨몸으로 맞선 사람들에 대한 역사교사로서 조그만 헌사"(머리말)다.
255쪽의 책자에 담긴 사진은 모두 빛바랜 오래된 흑백사진이다. 개중에는 앞의 사진처럼 선명한 것도 더러 있지만 내용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형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그 사진이 함축하고 있는 배경과 사연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추출해 낸다. 그것은 물론 시대를 넘어 이어진 지역적 연대의식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역사교사 정재철에게 역사는 무슨 거대한 사건이나 담론이 아니다. 그는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백성들이 교직해 낸 크고 작은 일상의 삶도 궁극적으로 역사와 이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은 마을에 무슨 역사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이 나고 서로를 죽이는 큰 불행을 만나야 역사인가. 이곳에서 숨 쉬고 사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과 애환도 역사가 아닐까." - <부안풍경> 74쪽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제1부는 '사진 한 장으로 보는 부안 풍경'이다. 저자는 변산교 개통식과 일본의 조선 유학생들이 봄맞이를 찍은 사진, 꽃자주색 비단 방석의 아기 돌 사진, 광산기술양성소의 졸업사진 등에서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네 삶을 읽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