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명령, 낙하산을 투입하라.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밀리터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낙하산 투입 작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은 정부 산하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속속 내리꽂히고 있는 낙하산들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4월 28일 '청와대가 낙점할 때까지 기다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4.13 총선에 가려진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의 실태를 꼬집었다.
기사에 따르면 공기업과 공공기관 임원으로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임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낙하산 인사들이 투입되는 공기업의 상당수가 이명박 정부 당시 방만한 경영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에너지 공기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또 다시 논란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임명된 이후인 2013년 후반기부터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시작했다. 2013년 9월26일 선출된 최경수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던 친박인사였고, 10월2일 취임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 역시 박근혜 캠프 선거대책위원 출신이었다.
이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투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낙하산들이 줄줄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정권창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보은인사가 끝을 모르고 이어졌던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김학송 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정창수 사장, 한국지역난방공사 김성회 사장, 한국마사회 현명관 사장, 한국농어촌공사 이상무 사장, 국립공원관리공단 박보환 이사장, 한국공항공사 김석기 사장 등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거나 새누리당 당적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상당수가 그 무렵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정권 내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9월에는 박근혜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선출되었고, 역시 박근혜 캠프 출신인 공명재 계명대 교수가 수출입은행 감사에 임명됐다. 곽성문 전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으로 선출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장 낙하산 비율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3년 11월 14일 당시 민주당의 장하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 78명 중 34명(45%)이 낙하산 인사로 밝혀졌다. 이는 같은 기간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비율인 32%보다 높은 수치다.
2014년 5월2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알리오>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공공기관장 153명 중 상급부처나 정치권 출신, 대통령 측근 인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49%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공공기관장 두 명 중 한 명이 박근혜 정부가 내려보낸 낙하산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실태를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임원급으로 확대해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다. <SBS 취재파일>이 지난 2015년 3월15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취임 이후 2년 동안 공공기관의 임원 86%이상 물갈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 중 당연직을 제외한 1,869명 가운데 낙하산 인사는 31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임명직 임원의 17.1%로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 29.8%가 높다.
"(낙하산 인사는) 국민들께도 큰 부담이 되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
이 발언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현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하고 난 뒤 자신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이명박 정부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온전히 박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결과다. 문제는 각계각층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3일 이성한 전 경찰청장은 한국전력 상임감사에 취임했고,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은 비상임감사로 재신임됐다. KBS에서 횡령 혐의로 해임된 김구철 아리랑TV미디어 상임고문은 공석인 아리랑TV 신임 사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한 한국전력 상임감사는 세월호 부실 수사로 옷을 벗은 인물이며, 김구철 고문은 2012년 '여풍당당 박근혜'라는 책을 집필한 전력이 있다. 모두 보은인사란 비판을 비켜갈 수 없는 인물들이다.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는 기관의 효율적 운영을 가로 막는 동시에 부실경영을 촉발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손꼽힌다. 전문성과 실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임명되면 필연적으로 조직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기강 해이가 이어져 결국 기관 전체가 방만하게 운영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수십조의 국민혈세가 낭비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야말로 낙하산 인사의 폐혜를 입증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5일 <알리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임기가 완료되는 공공기관장은 모두 81명에 이른다. 오는 9월에는 22개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된다. 지금까지 나타난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들 중의 상당수가 낙하산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낙하산 인사는 근절되야 한다던 박 대통령이 오히려 낙하산을 대규모로 내려보내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그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 저하를 걱정하고,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부르짖었던 당사자다. 일선 현장의 힘 빠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공기관의 경영 악화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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