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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통제영길놀이 <영거>행렬. 취타대에 이어 뒤에는 이순신장군 영정을 모신 영거가 보인다. 올해는 군악대 다음에 영거행렬에 이어 '영교'행렬이 처음 등장한다. 그 영교에는 칠천량전투 희생자중 전라좌수영 출신 1천위의 위패를 모셨다.
오병종
선두 행렬에 이어서 본 행렬이 있는데, 본 행렬 선도차에 이은 군악대가 등장하고 바로 영거와 영교가 등장한다. 영거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수레다. 그 다음이 '영교'다. 이 수레는 고향으로 돌아오신(귀향) 위패를 모신 수레다.
칠천량해전은 조선해전사에 가장 불명예스런 치욕의 해전이었다. 1597년 정유년 7월 이순신이 떠난 자리에 원균이 이끈 수군들은 초반에 승리도 하지만, 결국 패하면서 가덕도 거쳐 거제도의 칠천항구로 피신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수륙 양방향 공격을 당한다. 육지로 피신하다 원균도 전사했으니 바다의 수군들은 그 피해가 얼마나 컸겠는가? <불멸의 이순신>드라마 장면들이 아직도 오버랩 된다.
우리는 수군을 대거 잃어야 했다. 무려 2만 명의 수군이 전사, 침몰, 실종당했다. 거북선도 세 척을 잃었다. 이때 남은 배가 불과 몇 척. 주변 배를 모아보니 12척이었다. 여기서 나온 유명한 말이 아직도 회자된다. 백의종군 후 돌아온 이순신 장군의 말이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