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국내 최초로 '노동이사제' 도입한다

15개 투자출연기관에 노동자이사 1-2명 참여... 5월 입법예고, 10월 시행

등록 2016.05.10 09:55수정 2016.05.1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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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시청 브리핑실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시청 브리핑실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서울시제공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가하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

노동이사제는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의 참가를 보장하는 것으로서, 예정대로 도입 확산될 경우 경영계의 전횡을 막을 수 있어 우리나라 노사관계 정립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그동안 '이사회는 경영자들의 성역'으로 여기며 노동자들의 참여를 극구 반대해왔던 경영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서울시는 서울메트로 등 15개 공사·공단·출연기관에 10일 노동자 대표 1~2명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근로자이사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이사제'의 법적 용어이다.

서울시는 이날 "근로자와 경영자는 소통을 통해 책임과 권한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라며, "근로자이사제 도입으로 근로자의 주인의식을 강화함으로써 투명한 경영, 대시민 서비스 개선을 이루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 동력이 창출되는 선순환 경영구조 확립 계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14년 11월 발표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혁신방안'에서 '근로자이사제' 도입 계획을 밝히고 이후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노동계, 학계, 경영진, 노조위원장 등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

노동자이사는 향후 법률과 정관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사업계획, 예산, 정관개정, 재산처분 등 주요사항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참여하며, 타 이사들과 차별화된 근로자 특유의 지식과 경험,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대신 노동자이사는 뇌물을 수수했을 때 공기업의 임원과 동일하게 공무원에 준하는 형법의 적용을 받는 등 법령, 조례, 정관 등에서 정하는 제반사항을 준수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적 갈등비용 예방효과 기대... 유럽에서는 보편적으로 시행중


도입 대상은 노동자 30명 이상의 서울시 산하 15개 공단·공사·출연기관으로, 300명 이상 기관은 2명, 그 미만은 1명이다. 노동자이사들은 이미 직원으로 근무 중이기 때문에 모두 비상임이사로 일하게 된다.

도입대상 기관은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서울의료원, SH공사, 세종문화회관, 농수산식품공사, 신용보증재단, 서울산업진흥원, 서울디자인재단, 서울문화재단, 시립교향악단, 서울연구원, 복지재단, 여성가족재단 등이며, 출자기관인 ㈜서울관광마케팅과 근로자 30인 미만인 장학재단, 자원봉사센터, 평생교육원 등은 제외된다.

노동자 이사는 이사가 될 경우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하며, 임기는 지방공기업법에서 정하는 3년이다. 무보수로 하되, 이사회 회의참석수당 등 실비를 지급한다.

서울시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사회적 갈등비용 예방효과'를 꼽았다.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수준이 OECD 27개국 중 2위였으며, 그중 노사갈등이 2번째로 심각한 갈등이었고,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매년 최대 246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하나의 갈등 해소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노동이사제가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OECD에 가입된 유럽 18개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도입 돼 시행중이란 것이다.

지난 1951년 광산·철강 제조분야 종업원 1000명 이상 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독일은 지난 1976년부터는 2000명 이상 민간기업에도 도입하고 있다.

스웨덴은 1973년 100인 이상 기업에 도입했으며 현재는 25인 이상 모든 기업에 도입했고, 프랑스도 1983년 공공부문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해 2013년부터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위법 소지 없고, 경영권 훼손하지 않는다"

서울시는 그동안 일부 경제단체 등에서 우려한 문제제기에 대해 "법의 테두리에서 제도화함으로써 위법소지가 없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경영권을 훼손하지 않으며, 의사결정 지연으로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여지도 없다"고 일축했다.

노동이사제가 '법령에 위반된다'는 우려에 대해선 "법률에서 포괄적으로 위임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헌법상 권리인 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인 조례를 제정해 도입하기 때문에 위법소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영권 침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헌법에서 보장한 자유시장 경제질서는 경영상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념으로서 근로자들의 경영권 참여 금지를 뜻하는 법리가 아니"라며, "오히려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의 책임성과 주인의식을 강화해 거버넌스, 협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의 기본가치에 부합된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119조 1항은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제23조는 재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함으로써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기업의 경영상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념으로 근로자들이 경영권에 절대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법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결정 지연으로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여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노동자이사는 기관별로 1~2명으로 과반수를 점하지 않으므로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등의 경영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여지는 구조적으로 없으며, 오히려, 이사회에 노동자이사가 포함되어 이사회 구성원이 다양화됨으로써 근로자 특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접목하게 되어, 투명한 경영이 가능하게 하고 대시민 서비스를 제고하는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에 대한 조례(안)를 오는 5월까지 입법예고하고 8월까지 공청회 등을 거쳐 조례(안)를 의회에 제출, 10월 경 제도를 시행한다는 목표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시민이 주인인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이해관계자 모두가 주인이자 소비자인 만큼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민간보다 높은 수준에서 공기업 경영을 더 투명하게 실현하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근로자이사제의 안착을 위해 노사 양측과 각계 전문가,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총 반대성명 "현실 도외시한 제도... 심각한 부작용과 피해 우려"

이에 대해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서울시의 '노동이사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총은 "노동이사제는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매년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공기업의 개혁을 방해하고 생존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경제체계나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이기에 심각한 부작용과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그 이유로 첫째, 노동이사제는 우리나라의 시장경제질서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모델로 하고 있는 독일식 노동이사제는 기업들이 2차 대전에 동원되었던 역사적 반성에 따른 것으로 노동조합의 공동결정을 통해 재발을 막아보자는 취지였으며 이제는 독일에서도 자본시장 발전을 막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제도로 외면 받고 있다는 것.

경총은 "근로자이사와 경영진의 의견대립으로 이사회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됨은 불 보듯 뻔하다"며 "결국 그 손해는 주주들이 부담해야 하며, 주주가치의 제고라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둘째, 노동이사제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현실을 간과한 제도라는 것.

경총은 "우리나라는 아직 노사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희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협력적 노사관계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며 "공기업 노사도 협력적 노사관계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이사는 기업 발전을 위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역할을 하기 보다는 근로자 이익을 대변하는데 그 역할이 편중될 것이라는 것.

경총은 "벌써부터 공기업 노조들은 노동이사제를 통해 성과연봉제와 공정인사제도 도입을 저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은 그야말로 공기업의 개혁과 발전을 포기하겠다는 발상과 다름 아니다"며 서울시가 노동이사제 도입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다음은 10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열린 기자설명회 일문일답이다.

- 노동자이사의 회사 내 지위는.
(박원순 시장) "일반 비상임이사와 똑같은 위상을 갖는다. 똑같이 토론에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물론 이견이 있을 경우엔 다수결에 따라서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 이사면 임원실에서 근무하나. 보수는.
(시장) "직원 신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일은 하기 때문에 별도의 방을 갖는 것은 아니고. 이사회 있을 때마다 참여한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무보수이지만 회의수당은 받을 수 있다."

- 노동자로서의 월급은 나오는 건가.
(시장) "원래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일은 그대로 하고 월급을 받는다."

- 노동자이사가 되려면 노조에서 탈퇴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시장) "아무래도 경영을 위한 제도로서의 이사회이기 때문에 노조활동을 그대로 하는 것은 모순이 될 수 있다. 노동자 대표이기는 하지만 원칙적인 노조의 입장은 아니다."

- 15개 기관에 10월 일괄적으로 도입한다는 목표가 가능한가. 노조는 노동이사제에 동의하고 있나.
(명순필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조위원장) "서울시 산하기관 노조들은 현재 전반적인 노동이사제 도입에 동의를 했고 세부사항은 TF를 구성해 협의해 가면서 진행할 계획이다."

- 10월 실시가 가능한가.
(시 관계자) "시의회 의결 후 15개 기관에 도입할 예정이다."

- 이사회 선임은 어떻게 하나.
(시 관계자) "임명 절차는 지방공기업법과 지방출자출연법에서 정하는대로 공개모집을 통해 임원추천위에서 복수 추천하면 시장이 최종적으로 임명하게 된다."

- 비상임이 아닌 상임이사로는 임명할 수 없나.
(시 관계자) "상임이사는 상근하면서 그 회사의 경영자로 일하는 것이다. 근로자 대표는 비상임직으로서 경영직이 갖지 못하는 근로자의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단지 공사, 공단, 출연기관 노동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시민 서비스까지 개선된다면 좀 더 빨리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다. 노동자이사의 역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은.
(시장) "노동이사제가 단순히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이사가 참여하면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현장의 어려움이 반영되지 않은 채 결정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을 막는 통로가 될 것이다. 경영자적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의사수렴을 할 수 있어 경영진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되면 공기업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시민들에게도 좋은 서비스를 하게 될 것이다. 이사 1-2명만 참여해 결국 이용만 당하는게 아니냐는 노조측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다."

- 노동자이사는 아무래도 노조 간부가 될 가능성이 큰데, 그럼 노조 대표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독일 폭스바겐은 노조 간부가 이사회 간부가 되어서 뒷돈 받아서 무마하고 넘어간 사례가 있다. 이런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박태주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노조 간부는 노조를 탈퇴해야 출마할 수 있다. 2005년 폭스바겐의 종업원평의회 의장이 그런 짓을 해서 평의회가 일괄사퇴한 적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채택해도 완전 부패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는 것 아닌가."

- 노동이사제에서 노동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지.
(명순필 위원장) "기대반이다. 일단 참여 속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산하기관 내 비상임 이사 가운데 노동 출신 인사들과 노사간 쟁점 있을 때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풀어왔다. 신뢰도 중요하다."
#노동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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