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년
당초 이날 오후 5시 20분 시장실에서 옥바라지골목보전대책위 관계자들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던 박 시장은 이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현장에 있던 서울시 공무원을 질책하고 "지금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이 공사를 중단하겠다. 제가 손해배상을 당해도 좋다"고 전격 선언했다.
박 시장이 생각지도 못했던 강력한 한 방을 날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용역직원들의 완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주민들은 환호성을 지른 반면, 철거를 진두지휘하고 있던 현장의 공무원들과 재개발 조합 측 용역직원들은 일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상황을 일거에 전복 시키는 기막히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공존에 대한 인식' 환기한 박 시장의 철거 중단 선언개발이냐 보존이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논쟁 중의 하나다. 개발 논리를 주장하는 측은 막대한 자본 이득과 상품 가치를 내세우는 반면 보존 논리를 주장하는 측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주민들의 생존권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웃는 것은 언제나 개발논리를 앞세운 쪽이었다.
그들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 힘을 동원한 물리적 방법이라는 것을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권력이 부여해 준 법적 명분과 물리적인 힘이 그들에게 있는 이상 보존 가치라든가 지역민의 생존권 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야만적 폭력이 대신했다.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옥바라지골목 역시 다른 철거 지역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운명이었다. 서울시는 이번에도 개발 논리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에 따라 일제시대와 군부독재 시절의 애환과 질곡이 담겨 있고, 지역민들의 추억과 애증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박 시장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옥바라지골목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이곳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기는 어려워졌다. 이미 철거가 상당 부분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철거 중단 선언이 갖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그의 행동에는 자본과 개발 논리에 짓눌린 약자에 대한 배려가 녹아 있기 때문이며, 대립과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절차적 과정의 중요성이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이 또 있다. 그가 공존에 대한 인식을 우리 사회에 환기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그래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 이는 서울시장에 부임한 이후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공존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