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조 위원장이 배포를 중단시킨 진실화해위의 영문책자.
오마이뉴스
반면 보고서 영문 번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박은 계속 이어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에디터인 하미쉬 맥도날드씨였다. 그는 '진실이 위험에 처한 한국'이라는 칼럼에서 "이 책자를 읽고 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영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 책의 영어는 분명하고 올바르다(it is quite clear and correct)"고 번역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영문 보고서가 엉터리라서 배포 중지했다'는 이영조 위원장의 주장과 '사실은 진보 성향인 전임 위원장의 글이 편향적이기에 영문 책자 배포를 중단한 후 파문이 일자 아무 문제없는 영문 번역을 문제 삼아 그 번역, 감수자들을 모욕한 것'이라는 양측의 주장은 민사 소송으로 번지게 된다. 김성수 박사 등 번역자 3명이 이영조 위원장에게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으로 총 6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때가 2010년 5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근 6년 전의 일이었다.
만 6년 3개월 끝에 대법원 "번역 문제 없다"그렇게 해서 시작된 민사소송은 이후 근 6년간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거치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16년 4월 28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번역자들의 손을 들어준다.
'문법, 구문상의 오류' 등을 이유로 영문 보고서 배포를 중단시켰다는 이영조 전 위원장의 주장을 배척하고 소송을 제기한 김성수 박사와 박은욱씨, 마이클 윌리엄 하트 등 '번역, 감수자의 명예를 훼손시킨 책임을 물어' 총 2400만 원의 배상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이영조 전 위원장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이에 기자는 근 6년간의 소송 끝에 '영문 번역에 문제가 없음을 최종 확인한' 김성수 박사와 지난 5월 12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인 김 박사는 당시 파문으로 실직 후 상당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음은 김성수 박사와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기억하기에 2010년 1월 당시, 민사 원고 측이었던 이영조 당시 진실위 위원장의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 지시에 많이 분노하고 괴로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심정, 어떠했는가."어이가 없었다. '번역이 엉터리'라는 이유로 멀쩡한 진실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금지 시킨 이영조 위원장은 무엇이 엉터리인지 하나도 지적하지 못했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진실위 내부 게시판에 '영어가 엉터리라서 진실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금지 시켰다면 어떤 부분이 엉터리인지는 왜 지적하지 못하냐?'며 공개 질문했기도 했다.
또 이영조 위원장에게 진실위 직원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진실위 영문 보고서 번역 감수팀과 '영어 테스트'를 해서 진 쪽이 천만 원을 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 처음 <오마이뉴스> 보도 후 재계약을 거부당하여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진실위를 떠나야 했다. 영문보고서 배포를 금지하고 회수하는 조치를 폭로한 것에 대한 보복적인 인사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러했나?"영문책자 배포 금지는 2009년 12월에 있었고 그 후 나는 곧 진실위 내에서 조사국으로 보내졌다. 나는 특기가 국제협력 전문계약직으로 진실위에 들어 왔는데 그런 나에게 엉뚱한 조사국 배치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지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4개월 후인 2010년 4월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위원회를 떠나야 했다.
그 후 이영조 위원장은 내 후임자를 새로 뽑았다는데 내가 하던 국제 협력과 국제 홍보를 동시에 다 할 수 없어 얼마 후 후임자가 그만 두었다는 말을 내부 직원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그래서 진실위 종료시까지 내 후임자가 없이 공석이었다고 한다.
또 2010년 초, 영문 보고서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릴 때 나는 진실위에서 회계 감사를 받았다. 물론 그 전 해에 감사원 감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영문 번역에 문제가 있다면서 왜 뜬금없이 회계감사를 했을까? 미운 직원 괴롭히기 혹은 길들이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감사 결과는 깨끗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은 2010년 1월 4일 이영조 위원장의 신년사다. 그날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위가 이룩한 성과는 다른 여러 나라에도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미진하다고 보는 분도 있겠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많은 성과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라며 국제협력의 성과를 진실위 전 직원들 앞에서 칭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마이뉴스>에 영문 보고서와 관련한 기사가 보도된 후 국제협력 담당자인 나는 국제협력과는 무관한 조사국으로 보내졌고, 그 후 낮은 인사평가, 재계약 없는 계약 종료로 실업자가 된 것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8개월간 실업자 생활을 했다. 참 억울했다."
"이영조씨,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