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님의 7주기 추모제가 끝나고 활동가 단체 사진을 오렌지가 찍어줬습니다. 눈물바람인 활동가와 피해자에게 이 날만은 환하게 웃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땐 늘 "오렌! 지~~"를 외쳤죠.
오렌지
네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한 달 전쯤인가? 안국역 사거리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세월호 집회 때 너는 경찰이 쏘아대는 캡사이신에 맞아 피부 발진이 나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며, 그게 얼마나 몸에 해로운 약품인지 피해자들을 규합해 인권침해 진정을 해야겠다고 씩씩거리면서 이야기했었는데…. 그게 네 몸이 예전같이 않아 생긴 증상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만 네 말만 믿고 너랑 같이 경찰 욕만 실컷 했지, 달리 살피지 못했다.
이틀에 한번 투석을 하는 몸으로는 남들처럼 오래 살진 못할 거라고, 이미 10대 때부터 투석을 해왔으니 이미 오래 살고 있는 편이라고 했던 너의 말을 네가 중환자실에 실려 가고서야 숨 막히는 답답함과 함께 떠올렸단다.
내가 너의 몸 같았으면 나는 어쩌면 매일 밤 울고 지냈을지 모른다. 너의 마지막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너도 실은 정말 두려웠을 텐데, 어쩌면 종종 눈물 흘렸을 텐데…. 그런 너의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했다. 늘 니가 밝았으니까. 내 기억에 니가 눈물을 보인 적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봤을 때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너는 누구보다 눈물을 소중히 생각했던 것 같다. 비가 내려 유미씨 영정 피켓의 코팅된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면 너는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유미씨가 우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네가 내게 프로필 사진 쓰라고 준 사진들도 대부분 눈물이 맺혀 있어 쓸 수가 없단다. 그래도 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담아낸 너의 사진들 덕분에 우리 사회의 보다 많은 이들에게 피해자들의 아픔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엔딩 장면으로, 황유미 추모제 때 슬픈 표정의 실제 아버님 사진은 네가 찍었고 무려 50만 명이나 봤잖아. 너도 많이 감격해했었지. 그 뒤 넌 또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뛰어다녔지.
미안하지만, 그래도 또 고마웠던 일오렌지야. 이렇게 떠나고 난 뒤에 말하는 게 아직도 미안하지만 그래도 또 고마웠던 순간을 이야기해본다.
긴 시간동안 피해자 가족들의 일인시위 현장에 네가 함께해서 든든했단다. 피해자 가족들이 시위를 하며 삼성본관 경비보안들의 폭력에 노출됐을 때 너는 카메라를 바짝 들고 한순간의 폭력도 놓치지 않겠다고 함께 맞섰다. 그 덕에 더 큰 불상사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번은 그 앞에 출동한 경찰이 너의 팔을 잡고 늘어졌을 때, 너는 "신장 투석하는 팔입니다, 저도 장애인이에요, 이 팔 잡아당기면 정말 큰일 나요"라고 분노하며 팔목에 차고 있던 보호대를 풀었지. 어린아이 손목만큼 커다란 혈관이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난생처음 본 경찰은 흠칫 놀라 한걸음 물러났지.
그땐 나도 네가 너무 안쓰러웠지만 넌 그러고도 내색 없이 씩씩하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그저 경찰과 삼성 경비와 폭력과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다. 진작에 그냥 오렌지 너에 대해, 너의 힘듦에 대해서 좀 물어보고 같이 아파해주고 표현했어야 하는데…. 그게 가장 미안하단다.
그렇게 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들 곁에서 함께 싸워왔던 너는 '죽으면 삼성본관 앞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네 동생에게 남겼더랬지.
오렌지야, 그렇게 하지 못해 또 미안하다. 대신 우리 열심히 싸워서 삼성이 다시는 노동자들 목숨 쉬이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소중한 동지이자 친구 오렌지야.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길…. 안녕.
[관련 기사] 집회 뛰어다니던 오렌지, 이름 딴 인권상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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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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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본관 앞에 뿌려달라'... 유언 지키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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