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만나듯 읽으며 뽕 따듯 옛 그림 감상하기

[서평]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등록 2016.05.25 18:02수정 2016.05.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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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상 대사를 지극히 사모한 선묘 낭자 (부석사 선묘각)
의상 대사를 지극히 사모한 선묘 낭자 (부석사 선묘각) 임윤수

밤참을 거하게 먹고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퉁퉁 붓는 사람이 많습니다. 퉁퉁한 얼굴이 부의 상징이던 가난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에 밤참을 거하고 먹고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퉁퉁한 얼굴을 보며 밤새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던 딱 그 기분입니다.

새벽녘까지 거한 밤참을 먹듯 감상하며 읽었습니다. 프라이드치킨과 맥주, 돼지족발에 소주, 김치전에 막걸리까지 곁들여 먹듯 그렇게 읽었습니다. 라면국물을 마시듯 후루룩 거리며 읽고, 김치줄기를 씹듯 아사삭 거리며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옛 그림에 서성이던 가슴, 스님들 수행여정에 두 손 모으던 마음이 새벽녘까지 이어지다 보니 책을 읽은 기분이 퉁퉁 부어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옛 그림에 비춘 대덕고승 수행이력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지은이 조정육 / 펴낸곳 ㈜아트북스 / 2016년 5월 2일 / 값 25,000원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지은이 조정육 / 펴낸곳 ㈜아트북스 / 2016년 5월 2일 / 값 25,000원㈜아트북스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지은이 조정육, 펴낸곳 ㈜아트북스)는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보물, 불·법·승 중 이미 펴낸 <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옛 그림, 불법에 빠지다>에 연이어 펴내는 시리즈물로 '옛 그림'과 '승'을 꿰어 설명한 내용입니다.

책에서는 동아시아 스님 48분, 인도의 스님 6분, 중국의 스님 19분, 한국의 스님 14분, 일본의 스님 9분의 생애와 그 스님들 생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나 스님의 생애를 연상시키는 옛 그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내로라하는 49분 대덕고승들의 수행이력, 옛 그림 50여 편이 담고 있는 이런 감상 저런 배경이 짬짜면처럼 차려져 있어 님을 만나듯 스님 이야기를 읽고 뽕을 따듯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일석이조가 따로 없습니다.


중식당에 짬짜면이라는 메뉴가 등장한 지 몇 년 됐습니다. 짬뽕은 짬뽕대로 맛있고 짜장면은 짜장면 대로 맛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한꺼번에 먹는 건 여러 면에서 곤란했습니다. 하지만 짬뽕과 짜장이 반반씩 차려지는 짬짜면이 나오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짬뽕과 짜장면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짬짜면은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메뉴가 분명합니다.

짬짜면 먹듯 옛 그림 감상과 승보 이야기 읽기를 함께


경망스럽다 할지 모르지만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가 그렇습니다. 짬짜면을 먹듯 '옛 그림'을 감상하며 '스님 이야기'를 읽고, '스님 이야기'를 읽으며 '옛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짬짜면이라는 메뉴가 실감 나지 않는다면 후라이드 치킨과 맥주, 돼지족발에 소주, 김치전에 막걸리 같은 구성이라 해도 아주 빗나간 표현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상대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내어주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행여 상대를 위한다는 구실로 구속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온전히 나를 다 주었는데도 돌아가서 가는 사람에게 서운해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저주 진언을 퍼붓는 대신, 가시는 걸음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도록 축원하는 것이 사랑이다."(본문 247쪽)

의상 대사를 사모한 선묘 낭자의 사랑이 이랬나 봅니다. 부처님 십대 제자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는 중국 둔황 석굴사원에 있는 칠존상으로 감상하고, 경허 선사의 생애는 김홍도가 그린 호랑이 그림으로 연상되니 옛 그림에서 스님 생애를 읽고 스님 생애에서 옛 그림에 감춰진 뜻을 헤아립니다.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부석사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부석사임윤수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곁에 있던 남편이 내 얘기를 듣자마자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호랑이!'라고 소리친다. 경허에 대한 전기를 읽을 때부터 남편의 머릿속에는 그의 초상화 대신 호랑이가 들어와 있었단다.

호랑이가 멸종된 한반도에서 호랑이 그림이 여전히 호랑이를 기억하게 하듯 경허가 살았던 격정적인 삶은 지금도 여전히 진리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본문 342쪽)

스님이 연상되는 그림, 그림으로 상징 될 수 있는 스님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이 불거진 혹처럼 툭툭 만져집니다. 그랬을 겁니다. 한두 점 그림이 아니고, 한두 분 스님이 아니니 선택하는 과정이 갈등이었고 결정하기 까지가 고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빠져들게 됩니다. 오롯이 불교이야기만 했다면 지루했을 겁니다. 스님의 삶도 사는 이야기이고, 절집 사정도 세상사입니다. 책에서 읽는 스님 이야기는 간색으로 그린 옛 그림입니다. 흑백도 원색도 아닌 간색으로 채색 된 그림 속에 구도의 삶도 그려져 있고 경계의 글도 쓰여 있습니다.

옛 그림에 담긴 대덕고승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감상되고, 마흔아홉 대덕 고승에서 연상되는 옛 그림은 불·법·승 삼보를 완결하는 마침표 같은 울림입니다. 인도의 아난과 중국의 도안, 한국의 수월과 일본의 난쇼까지…, 옛 그림으로 만나는 동아시아 스님 49분 이야기는 읽는 이의 가슴에 님을 부르는 뽕, 뽕을 따게 하는 님이 돼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지은이 조정육 / 펴낸곳 ㈜아트북스 / 2016년 5월 2일 / 값 2만5000원)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 아난과 도안에서 수월과 닌쇼까지, 옛 그림으로 만나는 동아시아 스님들

조정육 지음,
아트북스, 2016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조정육 #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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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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