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현대화 사업이 진행 중인 주택의 모습
신희완
둘째로,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기 비교적 어려운 독일에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쫓아내는 편법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현대화 사업이다.
이는 유럽 연합과 독일 정부 등에서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 사업 등과 긴밀히 연결돼 권장되는 사업이었고, 보통 보조금 등을 통한 지원도 있는 장려 사업이다. 현대화 사업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은 역시 임대료 제동책의 예외 중 하나였고, 그에 제동을 걸 수 없다.
결국 현대화 사업을 빌미로 과도한 공사 소음을 일으키거나, 공사 중 의도적으로 화장실을 고장 내는 등 정상적으로 집에서 생활할 수 없게끔 생활환경을 지속적으로 저하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 외의 여러 유사한 의도를 지닌 방법으로 세입자가 자진해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공공연한 편법이었다. 임대료 제동책은 이 방식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었다.
마지막으로, 이전 계약서의 임대료가 해당 지역 표준 임대료보다 10% 이상 높더라도 임대료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세입자로선 계약을 하는 당시 이전 세입자의 임대료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임대료 제동책 법은 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의 임대료가 얼마였는지 명시할 의무를 부과한다. 그리고 차후에 적발될 시 그동안 추가로 부담한 임대료를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편법 없이 정직하게 법을 따르고 그 법이 의도하는 바를 착실히 지켰다면, 애초에 베를린의 임대료 상승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 그 누구도 감시하지 않는데, 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의 계약서를 제시할 이유도, 그리고 제시된 계약서가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길도 없다.
각종 세입자 단체와 지자체의 도움이 있다지만, 임차인과 임대인이라는 껄끄러운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주변 시세에 비해 임대료가 확연히 높더라도 소송을 제기하는 세입자는 지난 1년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당장 계약을 해야 하는 것이 주요 대도시가 직면한 주택난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놓고 봤을 때, 이전 임대료가 얼마였는지 확인하면서까지 선택적으로 임대주택을 고를 개인적 여유가 있는 세입자는 많지 않다.
임대료가 주변에 비해 비싸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고 살기를 원하지, 자신이 계속 살게 될 집을 놓고 자신의 집주인과 소송을 벌이고 싶은 세입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정부가 사실상 세입자 개인에게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책임을 떠넘긴 것이고, 사실상 대부분 주택이 임대료 제동책의 취지와 무관하게 임대료를 계속해서 높일 수 있게 예외사항을 두었다. 물론, 각 주 정부가 해당 정책을 시행하던 초기에는 임대료가 실제로 상승하지 않는 가시적인 효과를 보였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베를린의 임대 시장의 상황을 봤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오히려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더 악화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베를린에서 임대료는 허용 수준인 표준 임대료의 10% 이내의 상승을 지키기는커녕, 표준 허용치보다 30% 이상 초과해 상승한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각종 언론에서는 이 연구 결과와 자체 조사 등을 바탕으로 "잘못된 정책이 독일을 주택난에 몰아넣고 있다", "임대료 제동책은 연막탄이었음이 밝혀졌다" "베를린에서 임대료 제동책은 작동하지 않는다"와 같은 제목으로 임대료 제동책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그나마 효과를 본 내용도 있다. 물론 임대료 제동책은 아니다. 이 법 제정 당시 변경된 주택 중개법의 내용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임대 주택을 찾는 소비자인 임차인이 중계 수수료를 지불하던 것을 중개인에게 주택 임대를 요청한 임대인이 중계 수수료를 지불하게 법으로 명시하는 주문자 원칙(Bestellerprinzip) 규정이다.
이 규정 역시 주택난으로 임대 주택이 절실한 임차인들이 임대인에게 중계 수수료를 대신 지불한다는 명목으로 임대 계약을 우선하는 불공정한 편법이 나타나게 만들었지만, 임대료 제동책에 비해서는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린에서는 임대료 제동책을 주도적으로 시행했던 베를린 여당 사회민주당(SPD)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에 베를린 건설부 장관인 사회민주당 안드레아스 가이젤(Andreas Geisel)은 현재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게, 임대료 제동책을 좀 더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