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려워도 국회는 안 간다는 정부, 왜?

한 달째 제자리인 '자본확충펀드' 논의, 한국은행 동원은 '꼼수'

등록 2016.06.03 11:45수정 2016.06.0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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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개념도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개념도참여사회

요즘 경제계의 핫 이슈는 단연 '자본확충펀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증자가 필요한데, 한국은행이 힘 좀 보태라'는 것이다. 부실 실상이 어떠한지, 또 구조조정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일단 돈부터 내라는 것이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금 더 궁색한 것은 '가장 상식적인 증자 방식'을 두고 꼼수를 찾느라고 벌써 한 달여를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현재 100%를 보유한 유일 대주주다. 그런 은행이 어려워져서 증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가장 상식적인 방법은 정부가 돈을 넣는 것이다. 돈이 없다면 돈을 마련해서 집어넣으면 된다.

국회 뒤에 숨은 정부

그런데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회를 가야 하는데 그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장장 한 달 동안 시간을 끌고 있다. 정녕 이것이 더 빠른 길인가?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왜 국회 가는 것을 꺼려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국회를 가면 그 동안 잘못한 것에 대해 야단'을 맞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낙하산으로 내려간 '모피아' 퇴직 관료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대우조선해양이 몇 년에 걸쳐 사실상 분식을 자행하는 동안 산업은행은 무엇을 했고, 산업은행을 관리·감독해야 할 금융위원회는 무엇을 했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야단을 맞는 것이 싫다는 것 아니든가?

그러나 돈을 내는 국민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마땅하다. 돈을 낼 때 내더라도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자초지종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다음번에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라도 고칠 수 있는 것 아닌가?


모피아 퇴직 관료와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국책은행을 경영했는지 그 실상을 알아야 앞으로 또다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일이 없도록 자격조건을 엄정하게 설정하고 책임을 지울 것 아니겠는가?

한국은행을 동원하는 '꼼수'를 모색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그것은 직·간접적인 부담을 통해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돈줄로 기능하는 국민 전체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행을 동원하는 '꼼수'는 그것이 꼼수이기 때문에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부실기업 위한 한국은행의 대출은 '위법'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즉 금융기관이나 금융시장에 '일시적으로 돈줄이 말랐을 때' 윤활유를 제공해서 무리 없이 금융시장이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이런 경우가 아니다. 몇몇 기업의 경우 근본적으로는 경영상태가 멀쩡한데 단순히 일시적으로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 경영상태 그 자체가 큰 부실에 직면한 것이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에 증자가 필요한 이유도 이들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이 '못 받을 정도로 썩어 버렸거나' 앞으로 이들 부실기업에 돈을 더 넣어주기 위해서다.

이런 경우는 단지 급전이 모자라는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가 아니라 지급불능 위기(solvency crisis)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지급불능 위기를 해결하는 기관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유동성 위기를 책임지고, 지급불능 위기는 그 대상이 민간 금융기관인 경우에는 예금보험공사가, 그 대상이 이번처럼 국책은행인 경우에는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체계의 기본 구조다.

이번 꼼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금 정부가 한국은행에 요구하는 일이 지급불능 위기 해결을 위해 돈을 찍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이 유동성 위기 이외의 상황에서 함부로 돈을 찍어 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행의 대출을 규율하는 한국은행법 제64조는 한국은행이 어음할인이나 증권 담보대출의 방식으로 '만기 1년 이내'의 대출만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만기 1년의 대출로 어떻게 산업은행 증자를 도모한다는 말인가? 1년 뒤에 한국은행이 대출을 회수하면 난리가 날 것이고, 당초부터 만기를 연장할 작정을 하고 대출을 해 준다면 이는 고의적인 위법행위가 될 것이다.

대출의 형식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대출해 주는 것을 규율하는 것은 '한국은행의 금융기관대출규정'이라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 규정 제2조에서 허용하고 있는 대출 형식은 만기가 1영업일인 '자금조정대출', 만기가 하루도 되지 않는 '일중당좌대출' 그리고 중소기업에 나가는 정책금융인 '금융중개지원대출'뿐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현존 규정으로는 증자 목적으로 금융기관에 대출해 주는 방법은 없다.

결국 한국은행을 동원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도, 동일한 문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한국은행의 본연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그리고 현존하는 법률과 규율체계의 측면에서도 모두 부당한 일이다. 정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식에 기반한 정도를 걷는 것'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전성인님은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중이며,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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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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