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는 주민들이 사흘째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김종술
막 병원에 다녀왔다는 유귀례 할머니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고령의 마을주민이 임시 대피소인 초등학교 입구에 모여서 웅성거렸다. 불안한 듯 연신 담뱃불을 붙인다.
6일 찾은 금산군 군북면 군북초등학교 체육관에는 주민 70~8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불산 사고가 난 공장 500m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다. 금산군 보건소와 군북면 새마을 부녀회, 의용소방대 여성대원들이 주민들의 건강과 식사를 돕고 있다.
체육관은 할머니들이 차지했다. 이불 하나를 챙겨서 쪼그리고 눕는다. 자리에 눕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어르신은 구석진 모서리로 숨어든다.
지난 4일 오후 6시 30분경 충남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램테크놀러지에서 불산이 누출됐다. 관계 당국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출된 불산(순도 49~55%)은 100㎏에 달한다. 이날 주민 40여 명이 안면마비와 두통, 호흡기 통증, 불안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공장에서만 지난 2013년 7월 첫 사고 이후 3번째 불산이 유출됐으며, 2014년 질산과 불산이 함께 유출된 사고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다.
<관련 기사 : 네 번째 불산유출..불안한 금산 군북 주민들>네 차례 불산·질산 유출..."이번에도 공장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날 오후 5시 30분 경, 불산이 유출됐고 회사 측이 사고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산이 유출된 후 1시간 이상 주민들이 불산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황규식 이장은 지난 4일 오후 5시 30분경 공장 건너편에 사는 주민으로 부터 공장에서 하얀 연기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황 이장은 6시 20분경에 서둘러 공장을 찾았다. 공장 경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장으로 뛰어 올라갔더니 무소불산 하역장에서 직원들이 방독면을 쓰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미 불산이 누출돼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황 이장이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작업자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안에 물이 고여서 처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황 이장이 "무슨 사고 난 거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때서야 "지금 보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감적으로 '불산유출'로 판단하고 금산군 환경과 담당자에게 연락했으나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6시 35분에 119에 신고했다. 그로부터 15분 후인 50분 경 119로 부터 주민 대피 연락이 왔다. 공장 측은 사고가 났는데도 황 이장이 신고할 때까지 행정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황 이장은 "불산이 유출되었으니 대피하라"는 방송에 이어 집집을 돌며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황 이장은 "이후 병원에서 폐사진을 찍었더니 불산을 흡입한 흔적이 하얗게 보인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고가 난 줄 몰라 밭에서 고추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