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내내 고도 유지를 위해 머리 위로 뜨거운 불길을 내뿜는다.
한성은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업 시간과 조례, 종례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우리 반에서는 '상위인지'라는 말만 나와도 아이들이 인상을 쓰고 하품을 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상위인지'였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만 나도 밥 할아버지처럼 25년이 지난 후 열기구를 다시 타고서 서른여섯의 무모했던 나를 떠올리고, 웃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25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는 그럼 처음으로 열기구를 탔던 나이가 오십 대였다는 말인가? 나는 이제 겨우 서른여섯인데! ㅋㅋㅋ''할아버지 멋지시다~'하다가 계산해보니 내가 더 훌륭한 것 같다. 만약에 열기구를 몇 살에 타보았는지를 가지고 삶의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계산법 같은 게 있다면 말이다. 건너편 열기구 바구니에 조그만 꼬마가 손을 흔들고 있다. 마음을 바꾼다.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어. 유치하게. ㅋㅋ'밥 할아버지는 한국을 자주 방문했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는 일 때문에 대전을 자주 갔었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은 아주 멋진 도시라고 옆에 있던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대학교에 다닐 때 룸메이트가 한국 사람이었다며, 한국 사람들 참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36년을 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서 한국과 한국 사람을 떠나왔는데, 터키의 열기구 안에서 미국인 노부부에게 한국과 한국인이 얼마나 좋은지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듣고 보니 한국은 참 좋은 나라이고, 참 좋은 사람들인 건 분명한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을 보아 예의상 던져주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젠간 아내와 함께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국가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만드는 이미지는 곧 한 국가의 이미지와 같다. 대통령 한 사람이 나서서 국가 브랜드, 국가 이미지 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격을 만들 수는 없다. 국민 한 사람이 곧 국가이고, 이들이 모여서 큰 이미지가 그려질 때 국가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행하며 특정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바라보라고들 한다. 하지만 터키를 여행하면서 터키의 모든 국민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마음을 나눌 수는 없다. 내 마음속의 터키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주는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모든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참 무뚝뚝한 편에 속한다. 살갑게 말을 건네거나, 인사치레로 말을 내뱉는 법을 모른다. 한국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닌데 말이다. 내가 만났던 외국 사람들은 나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을까? 애국자 아니라도 외국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더니 내가 딱 그 모양이 되었다. 우습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정말 예뻤다.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저 땅 아래에서 동화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보이는 저 예쁜 들판과 신비로운 기암괴석들 사이에서 서로 섬기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고 죽이고, 동굴을 파서 숨고, 서로의 신전을 파괴하며 수백 년을 살았단다. 지금도 저 예쁜 집들 사이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엄마는 구걸을 하고, 아이들은 1달러를 외치며 관광객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신들이 많이 계시는데, 왜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수십 달러를 써가며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고, 저 길 위의 아이들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1달러를 구걸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하는 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아마도 신이 있다면 딱 이 정도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신 것이 아닐까?'모든 것이 세세하게 보이지도 않고, 땅 위의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 곳. 달려가는 아이와 매연을 뿜는 자동차가 그림처럼 예뻐 보이는 곳.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이다. 정말로 이 높이에 올라와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슬픈 일이 넘친다면, 그것이 아마도 신께서 딱 열기구를 탄 높이 정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기 때문인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세상은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싶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