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아바노스는 도자기로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아바노스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한성은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위즈코낙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슈퍼마켓 점원들이 모두 도망을 간다. 영어로 말을 해서 그런가 보다. 나도 한국에서 그랬다. 누가 영어로 물어보면 '읭?!#$!#' 이런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피했다.
너무나 보편적인 반응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때 그때의 그때를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그러다가 젊고 곱고 마음씨까지 착한 아가씨가 손짓과 발짓과 터키어를 사용하여 버스 정거장을 가르쳐 준다. 결론은 "요 앞이야, 조금만 걸어가면 돼"였다.
요 앞에 있는 버스 정거장을 찾아 조금만 걸어가려는데, 버스 정거장은 없었다. 그리고 강을 건넜다. 카파도키아의 상징 같은 붉은 강(Red River)이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요 앞에 있는 버스정거장을 찾기 위해서 두 번을 더 멈춰 서서 물어봤고, 한 번은 지나가던 멋진 신사분이 지도를 들고 멍청히 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서 길을 가르쳐 주셨다.
터키 사람들 너무 좋다. 어딜 가나 대도시와 멀어질수록, 관광지와 멀어질수록 사람들은 여유가 넘치고 온화해진다. 우리나라도 똑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처음이라는 것뿐이다. 계속해서 헤매고 있다. 삶은 옥수수를 파는 청년이 나를 부른다. 옥수수는 됐고, 위즈코낙 가는 버스 정거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 친구 갑자기 손가락으로 멀리를 가리키더니 빨리 가라고 외친다. 손끝을 따라가 보니 버스 정거장이 있다. 냅다 뛰었는데 눈앞에서 노란색 버스가 떠나버렸다.
의심스러운 아저씨, 의외의 반전옆에 있던 경찰관에게 버스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또 1시간 뒤에 온단다. 버스 타고 15분 정도면 되는 거리인데, 그냥 걸어갈까 하고 지도를 봤는데 편도 2시간 30분은 걸린다고 나온다. 삶은 옥수수 청년에게 다시 걸어가서 버스 놓쳤다고 옥수수를 사 먹고 옥수수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고 1시간 만에 버스 정거장으로 돌아갔다. 털털거리며 노란색 버스가 온다. 기사 아저씨에게 위즈코낙 지하도시에 가냐고 확인차 물어봤더니, 안 간단다. '읭?!#!#'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버스가 휭 가버린다.
옥수수 같은 청년이 잘 못 알려준 걸까, 경찰관 아저씨가 나를 속인 걸까. 망연자실해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의심스럽게 생긴 아저씨가 거기 아니라고 따라오라고 한다. 이번엔 택시 호객인가 보다. 점점 지쳐간다. 그 옆에 있던 의심스럽지 않게 생긴 청소부 아저씨가 나를 향해 손짓으로 아저씨 말이 틀렸다고 따라가지 말라고 한다. 고마우신 분이다.
터키 사람들은 참 좋구나 하고 있는데, 의심스러운 아저씨와 의심스럽지 않은 청소부 아저씨가 갑자기 실랑이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고 있었다. 나는 또 당황하기 시작했다. '비루한 나를 위해 이러지들 마세요'라고 외치려던 순간, 의심스러운 아저씨가 논쟁에서 승리를 해버렸다. 그리고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따라오란다.
그리고 택시가 아닌 웬 담벼락 앞에 나를 데려다줬다. 버스 표지판도 없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돼, 30분 뒤에 올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쿨하게 가버렸다. 가는 뒷모습은 의심스럽지 않은 아저씨였다.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던 할머니 세 분이 일제히 나를 보신다. 그냥 웃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위즈코낙에 간다고 하니 또 토론이 시작됐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택시를 탔더라면 20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을 세 시간을 쏟아붓고도 절반 밖에 못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제는 나한테 있었어, 그런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