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의 두 충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곳

[대구의 서원] 가야국 허황후의 후손들이 와룡산 아래에 세운 용강서원

등록 2016.07.13 18:19수정 2016.07.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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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강서원 강당
용강서원 강당정만진

용강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 33길 101에 있다. 용강서원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하면 아주 객관적이다. 누구든지 주소를 들고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서원을 세운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서원 건립 장소를 달서구 이곡동 14-2번지(도로명주소 : 달서구 선원로 33길 101)에 잡은 것이 아니라 와룡산 아래로 잡았다. 용이 누워 있는 듯한 형상으로 둥글고 길게 능선을 펼친 채 대구의 북서쪽을 지키고 있는 와룡산의 정기가 용강서원에 서려 있다는 뜻이다.


이 서원이 처음 세워진 때는 1696년(숙종 22)이다. 처음에는 장동에 충렬사(忠烈祠)라는 이름으로 사당을 세우고 허득량과 허복량을 모셨다. 두 사람은 사촌형제이다. 그 후 1804년(순조 4) 지금 위치인 와룡산 아래로 옮겨 지었다. 다시 1812년(순조 12) 두 분에게 벼슬이 추가되는 증직이 내려지자 지역 선비들 사이에는 사당을 서원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사당은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용강서원(龍岡書院)'이라 편액되었다.  

 서원의 전신인 용강재(왼쪽)와 사당 충렬사
서원의 전신인 용강재(왼쪽)와 사당 충렬사정만진

하지만 용강서원도 1868년(고종 5)의 서원철폐령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때 용강서원은 훼철의 비운을 맞이했다. 다시 1920년, 문중에서는 충렬사 터에 용강재(龍崗齋)를 건립했고, 훼철된 지 120년의 세월이 흐른 1990년에 이르러 사당과 강당 건물까지 모두 복원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허득량과 허복량 두 분의 9대조로서 고려 때 문하시중을 역임한 허유전을 주벽(主壁, 중심이 되는 위패)으로 제향했다. 허유전을 주벽으로 모셨다는 것은 하득량, 허복량 두 분을 종향(從享)했다는 뜻이다. 주벽과 종향의 개념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면 불당이나 마애불에서 보는 삼존불상을 연상할 일이다.

허유전은 누구인가? 서원이 뛰어난 인물을 제사 지내고, 후대를 교육하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진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서원을 답사할 때에는 응당 그곳에 모셔지고 있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허유전은 사람이 타계한 이후 임금이 내려준 호인 시호를 가진 인물이다. 이는 허유전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허유전의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허유전은 1243년(고려 고종 30) 출생하였고, 과거 급제 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1321년(충숙왕 8) 정승에까지 올랐다. 정승은 일반적으로 익숙하게 알려진 조선 시대 직위로 말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허유전은 조선 시대의 영의정에 해당하는 문하시중이 되었다.

 강당과 뜰이 보이는 용강서원 풍경
강당과 뜰이 보이는 용강서원 풍경정만진

문하시중이 된 허유전은 나이가 81세나 되는 대단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원나라에 잡혀가 있는 상왕(上王) 충선왕을 고려로 모셔오기 위해 이역만리 먼 길을 가는 충성심을 보였다. 하지만 고려의 임금이 되고자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던 심양왕 고를 비롯한 방해 세력의 집요한 공작 때문에 허유전은 충선왕을 고려로 모셔올 수가 없었다. 그는 뒷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는데, 이는 허씨가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허득량은 병자호란 때 순국한 충신이다. 1597년(선조 30) 출생하여 척화(斥和)로 유명한 김상용, 김상헌 형제에게 학문을 배웠다. 스물네 살 되던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했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반란 때 큰 공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제 복량과 함께 경기도 광주 쌍령으로 달려가 적과 맹렬한 전투를 벌여 수많은 수급을 획득하지만 마침내 전사하였다. 1812년(선조 12) 자헌대부 병조판서(현대의 국방부장관)에 추증되었다.

허복량은 허득량보다 5년 뒤인 1602년(선조 35) 태어나 역시 김상용, 김상헌 헝제의 문하에서 배웠다. 종형 허득량에 이어 그 이듬해인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한 인재였지만 병자호란을 맞아 허득량과 함께 적에 대항하여 싸우던 중 광주 쌍령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허득량이 병조판서로 추증될 때 가선대부 병조참판(국방부 차관)에 추증되었다.


 선원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바라본 용강서원
선원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바라본 용강서원정만진

용강서원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인 숭현당(崇賢堂)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강당의 마루를 기준으로 왼쪽 방에는 사의실(思義室), 오른쪽 방에는 수덕헌(修德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인지를 생각하고, 늘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 진지하게 생활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새겨놓은 것이다.

용강서원은 본래의 건물인 용강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서당이 아니라 서원이므로 사당인 충렬사가 경내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당에는 앞에 말한 것처럼, 허유전, 허득량, 허복량 세 분이 모셔지고 있다. 경내에는 또 서원의 역사와 관련 인물들의 업적을 담은 용강서원 원정비(院廷碑)가 있어 볼 만하다. 그뿐이 아니다. 이 서원은 뒷뜰에 와룡산을 거느리고 있으니 더 이상 경치와 운치에 대해서는 중언부언을 할 까닭이 없다.

서원 뒷뜰에서 와룡산을 바라보며 허득량이 남긴 시 두 편을 읽어본다.

我武何時用 나의 무용을 어느 때 쓰리오
平生劒自知 평생 칼만 스스로 알았도다
勁哉原上草 굳세도다 언덕 위의 풀이여
特立疾風吹 태풍 같은 바람에도 우뚝 섰구나

漢水南之北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남한강이여
龍盤虎踞雄 웅장하고 견고한 천혜의 요새로다
帝鄕多壯麗 임금의 고을에 뛰어난 장사가 많으니
坐我一盃中 홀로 앉아 한 잔 술을 기울이네

혹시 '갑자기 웬 술?'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덧붙이자면, 시의 마지막 구절은 결코 돌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에 훌륭한 장수들이 많으니 마음이 놓여 혼자 앉아 있어도 저절로 주흥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자나깨나 나라의 안전과 평화만 생각하며 지내는 장군다운 발상이다. 한강의 지형이 요새이고, 또 나라에 우수한 장수들도 많다는 생각에 허득량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원에 왔으니 사당에 모셔져 있는 세 분께 한 잔 술을 올리고 싶다. 서원을 관리하는 분이 지금 계시면 그것이 가능한지 여쭈어 볼 일이다. "누가 계십니까?" 하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그때 문득, 찾아온 이를 반겨 허유전, 허득량, 허복량 세 분께서 "어서 오시게. 오늘 날씨도 청명하지 못한데 이리 찾아 오셨군 그래." 하고 화답해주시는 듯한 음성이 창공에서 은은하게 들려온다.

 용강서원 뒤에는 산이 용처럼 누워 있다. 그래서 와룡산이다.
용강서원 뒤에는 산이 용처럼 누워 있다. 그래서 와룡산이다.정만진

#용강서원 #허유전 #허득량 #허복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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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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