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어떻게 전라도를 '범죄 소굴'로 만들었나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 문제는 '전라도'가 아니다

등록 2016.06.17 15:09수정 2016.06.1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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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송치되는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 피의자들 10일 오후 전남 목포경찰서에서 신안 모 섬 여교사를 성폭행한 강간치상 혐의를 받고 있는 3명의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돼 호송차에 오르기 위해 경찰서를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찰 송치되는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 피의자들10일 오후 전남 목포경찰서에서 신안 모 섬 여교사를 성폭행한 강간치상 혐의를 받고 있는 3명의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돼 호송차에 오르기 위해 경찰서를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전남 신안군에서 발생한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8일에는 신안군 이장단협의회와 주민자치위원회의 사과문 발표, 13일에는 전라남도지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실추된 지역 이미지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섬을 찾는 관광객이 뚝 끊기고 특산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지역 경제도 여론만큼이나 차갑게 얼어붙었다.

가해자 중 학부모가 있는 점, 계획적으로 공모한 점, 섬이라는 특성상 범죄를 은폐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기 쉽다는 점, 과거에도 비슷한 범죄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다른 사건과 구별되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확장돼 사건 발생 지역 전체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 언론들은 여성 대상 성범죄를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번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MBN, 채널A, JTBC 등 종편은 이번 사건에 이례적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에 찾아가서 아이들에게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등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취재경쟁을 선보였다.

처음 사건을 보도한 목포MBC의 주민 인터뷰 내용은 "선생님들 볼 낯이 없어요. 주민 입장에서"였고, 다음날 SBS 8시 뉴스의 주민은 "창피하죠, 관광지라서 이미지도 있고 다 가정 있고 자식들도 있는 남자들이잖아요"였다. 그러나 6일 MBN <뉴스8>을 시작으로 채널A와 JTBC에는 보다 자극적인 내용들이 방영되었다.

종편이 보도한 주민들의 인터뷰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주민들의 발언에서 드러난 성평등 의식 수준은 매우 낮았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일부 주민들의 태도와 피해자보다는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이기적인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주민들의 발언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들이 특별히 악독해서라기 보다는,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일반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신안군 섬마을 이장단협의회장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주민들의 발언은 가해자에게 동의해서라기보다 기자들의 질문에 얼결에 나온 대답"이며, "언론이 특정 발언만을 과장해서 보도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만일 언론이 특정 발언만을 고의적으로 선별해 보도했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러한 언론의 태도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발하며 이는 '공범'과 같다고 논평했다. 또 주민들의 인터뷰 내용은 "해당 주민을 욕보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전라도'에 대한 혐오 정서를 유발시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양성평등연대 대표 페이스북 페이지
양성평등연대 대표 페이스북 페이지인터넷 갈무리

한 가지 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추모공간에서, 일베와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등 일부 남성들이 '모든 남자들을 일반화하지 말라'며 억울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을 일반화하지 말라'던 그들이 '전라도 사람 전부를 범죄자로 일반화'하는 것에는 앞장서고 있다.

김동근 양성평등연대 대표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안군 여교사사건-일반화인가, 집단의 책임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이 지역 전체의 잘못이라고 단정했다. '모든 남자'의 범주에 '전라도 남자'는 예외라는 모순 속에는 '전라도'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담겨 있다. 또한 겉으로는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에 분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라디언'과 '홍어'를 마음껏 욕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것 아닌가.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 '전라도'라 발생한 게 아니다

한 진보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민 전체를 악마로 몰아 모두가 피하고 저주하는 섬으로 만드는 데 동참하려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일베'가 아니더라도, 지역감정에 별생각 없이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되돌아봐야 한다.

전라도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언론도 이를 알 것이다. 그런데도 왜, 특정 언론은 '전라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일까?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는 '언론은 당파적인 정치행위'이며, 중립적인 제스처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지배세력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한다. 이들 언론은 금력과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편파적이다"라고 말한다.

'전라도'에 대한 지역차별은 전형적인 '분할통치(devide and rule)' 전략이다. 정부는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불안과 불만을 해결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 한다. 이때 동원되는 것이 종북, 전라도,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이념과 특정 지역, 사회적 약자이다.

겉으로는 '국민통합'을 외치지만 '편 가르기'를 통해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분노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뒤로 숨는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편이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기득권층의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말로는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지역감정이 유지되고 강화되길 바라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이다. 종편 등 일부 언론은 '전라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확대·재생산하여 지역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정부·여당에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을지 모를 일이다.

전라도 사람이라서 여성들을 죽이거나 강간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을 죽이거나 강간하거나 때려도 되는, 그런 사회라서 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방지할 '차별금지법'의 도입, 강력한 처벌과 확실한 재발방지를 촉구한다.

정부가 표면적인 해결 방안으로 애써 '가짜 평화'를 유지하려 하는 한 여성 혐오범죄는 언제 어디서고 되풀이될 것이다. 구조적 폭력이 일상적인 폭력을 낳는다.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폭력은 우리 사회를 더욱 병들게 할 것이다.
#여성혐오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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