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아라 욕해도 좋다, 그러나 밥줄까지 잘라서야"

[인터뷰] 은성PSD의 '전적자' 김세웅 팀장이 억울한 이유

등록 2016.06.19 10:21수정 2016.06.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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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웅 은성PSD 강남사업소 팀장이 사무실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김세웅 은성PSD 강남사업소 팀장이 사무실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권우성

"어젯밤 한잠도 못잤다. 여기 와서 먼지 먹고 건강 버려가며 4년 반을 열심히 근무한 죄밖에 없는데, 이렇게 억울한 경우가 또 어딨나."

서울지하철 2호선 스크린도어를 관리하는 은성PSD 강남사업소 김세웅 팀장(56년생)은 17일 오후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울분을 털어놓았다.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한 이른바 '메피아 근절 대책'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발표대로라면 김 팀장은 보름도 안 남은 오는 6월 30일 이후에 당장 거리로 내몰릴 처지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메피아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생겼고, 이 분들의 전문성 문제와 높은 급여로 신규채용 직원들의 처우가 열악해지는 문제가 있다"며 메피아 척결의지를 명확히 했다. 따라서 다른 직원들은 직고용되지만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출신 182명의 '전적자'들은 재고용에서 배제된다.

구의역사고 이후 메피아(서울메트로에서 내려온 전적자)들은 언론으로부터 사고의 '원흉'으로 찍혀 뭇매를 맞아왔다. 일도 못하면서 급여만 많이 받아가는 바람에 인력충원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김 팀장은 자신의 의지로 메피아가 된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2011년 당시 정년이 3년쯤 남았는데, 회사에서 '3년을 메트로에서 마치고 퇴직할 건지, 아니면 외주사로 가서 급여를 70%만 받는 대신 3년 더 근무할 건지' 선택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월급이 좀 깎이더라도 오래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외주사로 내려가는 것을 택한 게 이렇게..."


서울메트로는 누적된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8년부터 업무 외주화와 인력감축을 동시에 진행했고, 주변 업무라 판단되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경정비, 차량기지 구내운전, 특수차 운영, 역 및 유실물센터 등을 차례차례 외주화했다.

그 결과 전적자 90명과 새로 뽑은 기술자 25명을 직원으로 하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부문을 담당하는 은성PSD라는 외주사가 설립된 것이다. 외주사행을 유도하려고 급여, 후생복지, 신분 및 고용 보장 등의 처우 모두 서울메트로와 같은 수준으로 해줄 것을 약속했다.


협약이나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전적자들이 보관하고 있는 당시의 '분사설명서'에는 그렇게 쓰여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메피아'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인생계획 엉클어져... 본전 찾으려면 최소 1년 더 일해야 한다"

현재 은성PSD에 남아있는 전적자는 모두 36명이다. 그러나 이미 퇴직한 후 18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재고용된 사람 19명도 졸지에 같은 처지가 될 운명이다.

김 팀장은 "여기로 온 뒤 급여의 70%만 받아왔기 때문에 '본전'을 다 찾으려면 향후 최소 1년은 더 일해야 하더라"며 "우리는 순전히 서울메트로와 서울시만 믿고 왔는데, 어느 바보가 돈도 덜 받고 이런 식으로 잘리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김 팀장은 서울시가 자신들을 전문기술이 없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것도 서운해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여기서 이미 4년 이상 현장에서 뛰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다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부문은 국가 자격증이란 게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4년반의 경력이 곧 기술이지, 뭐가 기술인가"라고 반문했다.

당장 이달 말에 그만둬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 팀장은 "정년을 앞둔 사람들은 그에 따라 인생계획이 다 있고, 나도 오는 2019년 6월 말 퇴임에 맞춰 계획을 세워놨는데 갑자기 이달 말까지 나가라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엉클어져 버렸다"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어딨느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 보고 철피아, 메피아란 소리를 하며 욕을 해대는 것은 참을 수 있다"며 "그러나 잘리는 건 먹고 사는 문제 아니냐"며 싸울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김 팀장과 같이 갑자기 퇴출위기를 맞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외주사 '도시철도ENG' 전적자 이아무개씨도 지난 16일 기자에게 쪽지를 보내 "서울시와 공사의 경영효율화 방침에 따라 외주사에 가서 성실하게 근무한 직원들에게 상은 고사하고 벌을 내리는 것은 합당치 않다"며 "공사가 그동안 외주화로 얻은 실적을 치적으로 관리해오지 않았느냐"고 따져물었다.

은성PSD노조도 지난 17일 "오는 30일 계약 만료를 앞두고 167명의 비정규직 중 80명만을 고용 승계하겠다는 서울시의 대책에 충격을 금할 수가 없다"며 파업 찬반투표를 결행해 통과시켰다. 향후 협상에 납득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시장은 "안전 앞에 메피아를 배려할 수 없으며, (그들의 퇴출에) 만약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투트랙으로 별도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준병 도시교통본부장도 "개인적으로 성실하게 근무한 사람들을 어느 수준에서 처우할지는 한번 더 검토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일단 소송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겠다는 박 시장의 의지는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회사와 서울시의 방침에 부응해 외주사로 내려갔다가 졸지에 메피아 낙인이 찍히고 퇴출위기에 처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박 시장의 몫이 아닐까.
#은성P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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