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민족성향" 국민의당 의원님 왜 그러세요

[주장] 청년 목소리에 눈치보던 사회, 여성 문제는 왜 외면하나

등록 2016.06.21 15:55수정 2016.06.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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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5차 정책역량강화 워크숍에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5차 정책역량강화 워크숍에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국민의당이 여성 사회학자를 초빙해 성차별 구조에 대한 워크숍을 열었다. 하지만 이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발표가 끝난 뒤 "여자로서 당연히 출산하고 싶은 게 민족 성향", "우리나라의 좋은 문화가 계승되면 이거(저출산)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씩씩하게 목소리를 낸 '아재'(김종회 국민의당 의원)가 나타난 것이다(관련 기사 : 국민의당 '성차별구조' 워크숍 중 "저출산, 전통문화로 해결 가능" 주장 나와)

배우겠다고 불렀으면서 마음을 열고 경청하기는커녕 발표 시간을 무색하게 만드는 질문을 빙자한 주장을 하고 있다니. 성차별 구조를 타파하자는 내용의 워크숍인데 성차별이 더 심했던 과거로 시간 여행하자니 이게 무슨...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년 전이었다. 말과 글을 다루는 40대의 '배우신 분'들 앞에서 <월간잉여>를 창간한 계기, 잡지를 만들면서 만난 또래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뒤 질문 시간, 몇몇 어르신들은 "너무 부정적인 거 아니냐" "좀 더 생산적으로 살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어왔다. 이미 한 시간 동안 그 질문의 내용과 관련된 사회적 배경을 떠들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심리적 저항감 때문에 질문을 빙자한 훈계를 한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청년다움'이 있는데, 이에 부합하지 않는 젊은이가 못마땅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청년다움'과 같은, '여성다움'의 폭력

 지난 3월 방송된 <SBS 스페셜>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노력이니 도전이니, 열정이니 패기니 하는 '청년다움'에 대한 강조는 청년에게 도리어 억압과 폭력이 되곤 한다. 이런 말을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이들은 '꼰대', '개저씨' 등으로 불린다.
지난 3월 방송된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노력이니 도전이니, 열정이니 패기니 하는 '청년다움'에 대한 강조는 청년에게 도리어 억압과 폭력이 되곤 한다. 이런 말을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이들은 '꼰대', '개저씨' 등으로 불린다. sbs

노력이니 도전이니, 열정이니 패기니 하는 '청년다움'에 대한 강조는 청년에게 도리어 억압과 폭력이 되곤 했다. 청년다움을 말하는 주체가 청년 당사자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 때가 많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다행히 요즘엔 청년을 대상화하며 억압하는 꼴이 덜 보인다. 갈수록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 준비를 위한 비용은 막대한데 기회는 희소하며, 운좋게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일해도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압도해버리는 구조를 인지한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 스스로 만든 미디어가 숱하게 등장해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였고, 또래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약진했으며, 주류 매체도 이에 화답해 젊은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한 기사를 중요하게 보도한 덕분이다.

청년의 발화를 듣고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된 기성세대는 숙연해졌다. 현실을 안 뒤에도 청년에 대해 훈수 두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는 이도 간혹 존재했으나 잘못하면 뭇매 맞을 수 있기에 눈치라도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나는 청년이자 여성이다. 청년에 비해,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억압은 더디게 나아지는 것 같다. 청년으로서 발화할 때는 귀담아듣던 사람도, 여성으로서 발화할 때는 말을 막거나 곡해하며, 심지어 역으로 '여성다움'을 가르치려 드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여성은 아름답(다워야 하)고, 외모주의에 반기를 드는 여성들은 못생겼기 때문이며, 모성은 여자의 본능이기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여성을 완전하게 만들고, 집안일은 원래 여자의 몫이라는, 그런 여성에 대한 규정을 남자들이 내리는 걸 볼 때 당혹스럽다. 심지어 이들은 눈치도 안 본다. 그저 씩씩하다. 자신의 경험 밖의 삶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 직접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욕망을 고백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머뭇거리게 되는 문제들- 적은 가처분 소득, 경력 단절, 불안한 사회 안전망 등-에 대해 당사자로서 토로하는 것을 듣고도 자기가 생각하는 '여성다움'을 강요하길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여성도 의지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관점을 거부하고, 여성을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이자 집안일을 대신하는 몸종으로 대상화하기 때문 아닌가?

여성의 발언에 귀 막고 입 닫는 사회, 우리 그러지 말자

 꼰대의 대표적인 캐릭터 <미생>의 마부장. 마부장은 중년 남성이었지만, 꼰대는 나이 많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겪었던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증언해도 귀를 틀어막고 한국처럼 여자가 살기 좋은 곳은 없다는 믿음을 고수하며 '김치녀'를 혐오하는 젊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꼰대의 대표적인 캐릭터 <미생>의 마부장. 마부장은 중년 남성이었지만, 꼰대는 나이 많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겪었던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증언해도 귀를 틀어막고 한국처럼 여자가 살기 좋은 곳은 없다는 믿음을 고수하며 '김치녀'를 혐오하는 젊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tvn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겪었던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증언해도 귀를 틀어막고 한국처럼 여자가 살기 좋은 곳은 없다는 믿음을 고수하며 '김치녀'를 혐오하는 젊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헬조선'에서 청년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해도 귀 기울이지 않고 계속 열정과 노력을 강조하며 속 터지게 하는 꼰대를 경험한 적 있다면 그러지 말자. 그러는 게 님들이 싫어하는 '꼰대'랑 뭐가 다른가.

역지사지도 능력 같다.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것. 태생적 조건과 삶의 배경이 나와 다른 사람의 증언과 고백을 편견을 지우고 듣는 것. 나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역지사지할 수 있는 이들이었으면 좋겠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그래서 남성이 징병 문제 때문에 억울한 거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징집 대상이 아닌 자들을 혐오한다고 해결될 일인지는 모르겠다. 징병은 국가 폭력의 결과며, 모병제 등 대안을 주장하며 정부와 투쟁해 징집 규모를 줄이고 다수 남성이 징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득 아닌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폭력·억압을 최소화한 사회, '자기답게 살 권리'가 '혐오할 권리'를 앞서는 사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무엇을 입증할 필요 없이 기본적인 삶의 질은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존재가 나를 규정하고 억압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 계속해서 나의 경험과 주장을 공유하고, 다른 삶의 이야기도 경청할 것이다. 부디 국회의원들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길 바란다. 법과 제도를 만들며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중책을 맡았으니까. 국민이 행복한 변화를 이끌려면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욕망과 고통을 읽어내며 공공선을 추구해야 할 테니까. 게다가 한 수 배우겠다고 당사자이자 전문가인 사람을 모셨으면 집중해서 듣는 게 예의니까.
#국민의당 워크숍 #청년다움 #대상화 #씩씩한 헛소리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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