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출고전산 오류로 장비의 입출고 업무가 마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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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모 협력업체 장비담당자가 오전에 장비를 수령하러 회사에 들어왔다. 많지 않은 양이라 금방 장비를 챙겨주었고 전산으로 출고시키는 데 오류가 발생했다. 오류사항을 본사에 보내 조치를 요청했지만 오래 지연되었다. 하루종일 그 협력업체 담당자는 나와 함께 점심 먹고 오후 내내 기다리다가 저녁까지 먹고도 처리가 안 되서 내일 다시 오라며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업부서와 현장의 각 협력업체들에게서 엄청난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가입자 댁에 개통이 지연되고 있으니 문제가 안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민원을 나에게 연락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데 '장비 때문에 개통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장비담당자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현장과 본사 사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더 중요한 건 회사 내 같은 부서 사람들도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업무의 특성상 각자 다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내가 진행하는 업무는 단순히 장비가 납품되면 받아서 보관하다가 다시 협력업체에 필요할 때 내어주면 된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장비관리'라는 업무가 애매한 위치의 업무라 연관된 부서가 엄청나게 많았음에도 실제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일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해당 부서의 팀장들도 그 업무를 잘 몰랐다. 비슷한 다른 회사들과 달리 우리 회사는 이 업무가 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입자들에게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성하거나 서비스 장애를 처리하는 기술부서 내에 장비의 구매·재고를 담당하는 업무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일반적인 기술직 사원들과 소통이 될리가 없었다. 그리고 기술직 출신의 기술팀장들이 그 업무를 모르는것도 당연했으며 단순한 생각으로 하찮은 업무로 취급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은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나 스스로 극복하는 길밖에는 답이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맨땅에 헤딩'으로 하나씩 몸소 체험하며 내공을 길러 나갔다. 선배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 바로 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해결했지만 나는 귀찮아도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화면을 캡쳐하고 내용을 정리했다.
오랜시간 전산 시스템의 오류 건을 수집하고 정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본사 전산 담당부서와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전산 담당 부서안에서도 전산 시스템 각 메뉴별로 담당자가 나뉘어져 있는데 한 가지 문제로 2개 이상의 메뉴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자기 분야가 아니라 빨리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때는 오히려 내가 두 사람에게 조언을 해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짬'이 안 된다는 설움을 겪으며 '맨땅에 헤딩'하며 내공을 키운 결과, 나는 빠르게 내가 담당하는 분야의 전문가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결과 처음 입사했을 때 나이 어린 친구가 훨씬 나이도 많은 현장 직원들에게 '버릇없이 군다'는 소리하던 사람들도 공사 분명한 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고 전산 시스템 오류건을 분석하고 해결해 나가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나와 같은 장비담당을 하는 직원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입사 반 년, 한 달만에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던 회사에서 적응하고 나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같은 곳에서 나 스스로가 모든걸 결정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 뿌듯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전국 장비담당자 대표로 다음 버전 전산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프로세스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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