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산관리공사의 출자 현황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은행의 기업은행에 대한 10조원 대출의 불법성(제5단계)앞 절에서 보았듯이 제2단계가 실행 불가능하면 정부안은 그대로 붕괴한다. 따라서 더 이상 검토할 필요조차 없다. 이하에서는 정부가 한국은행 이외의 어떤 다른 경로를 통해 신용보증기금에 5천억원의 출연을 성공시켰다고 가정하고 그 이후 단계의 불법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만일 어떤 이유로 신용보증기금 출연 문제가 해소되었다면 그 다음 제3단계와 제4단계는 특별히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그 다음 걸림돌은 제5단계, 즉 기업은행이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이 부가된 약속어음을 가지고 한국은행으로부터 총 10조원을 대출받는 데서 발생한다.
한국은행의 기업은행에 대한 대출 그 자체는 가능하다. 한국은행법 제64조는 한국은행이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재할인이나 어음, 국채, 통화안정증권, 기타 금융통화위원회가 인정한 증권을 담보로 만기 1년 이내의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행법 제64조의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첫 번째 문제점은 대출의 만기 부분이다. 한국은행이 내줄 수 있는 대출은 만기 1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는데, 정부안에 따르면 '자본확충펀드'는 금년 7월1일부터 시작하여 내년 연말까지 최소한 1년 6개월 동안 존속하고, 그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계속 여부를 검토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일단 한국은행법의 조건과 정부안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내년 6월30일 이전에 다른 곳에서 재원을 마련해 와서 한국은행 대출을 차환하거나, 아니면 이 특수목적회사가 자신이 매입한 코코본드를 다시 시장에 매출하여 유동성을 마련하여 대출을 1년 이내에 상환할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 외에 한국은행이 당초부터 만기를 연장할 마음을 먹고 내년 6월30일에 다시 대출을 연장하는 기술적 해법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한국은행법 64조의 입법취지에는 반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대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출이 한국은행의 내부 규정에 반한다는 점이다. 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대출은 '한국은행의 금융기관대출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이 규정 제4조 제2항은 한국은행이 은행에 대출해 줄 때 담보로 잡을 수 있는 적격 증권의 범위를 총재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규정화한 것이 '한국은행의 금융기관대출세칙'이다.
이 세칙 제1조의2 제1항 제1호를 보면 은행이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 관계에 있는 회사에 대한 대출로 취득한 증권은 적격증권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만기 문제를 제외할 경우, 한국은행이 기업은행에 대출해 줄 수 있는가는 대출의 담보인 약속어음이 적격증권인가 아닌가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행이 제출한 약속어음은 적격증권인가? 아니다. 왜냐 하면 기업은행은 신설되는 특수목적회사와 공정거래법의 정의에 따른 계열회사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이 사용하는 개념에 따르면 계열회사란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를 말하며(공정거래법 제2조 제3호), 이 때 기업집단이란 동일한 지배력에 의해 지배되는 두 개 이상의 회사들을 말한다.(동조 제2호 나목)
그렇다면 기업은행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정부다. 그렇다면 특수목적회사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도 정부다. 따라서 이 두 회사는 공정거래법의 개념에 따른 계열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기업은행의 최대 주주는 기획재정부(의결권의 51.2% 보유)이고, 특수목적회사의 모회사인 자산관리공사의 최대 주주는 역시 정부(의결권의 56.84% 보유)다. (아래의 각 기구에 대한 출자 현황 참조) 따라서 자산관리공사는 정부를 동일인으로 하는 '동일인 관련자'가 되고(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조 제1호 나목), 신설 특수목적회사는 동일인이 동일인 관련자와 합하여 발행주식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최다출자자로 지배하는 회사가 되고(시행령 제3조 제1호 본문), 기업집단 적용의 예외 사유에도 해당되지 않는다.(시행령 제3조의2)
결국 비록 기업은행이 신설 특수목적회사에 직접 출자하지 않더라도 이 신설 회사는 공정거래법의 개념에 의한 기업은행의 계열회사가 되고, 따라서 이 회사가 발행한 약속어음은 현행 규정상 한국은행이 담보로 취득할 수 있는 적격 증권이 아니다.
물론 이 대출세칙은 한국은행 총재가 정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가 개정할 수 있다. 문제는 개정의 논거가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행법 제64조나 제77조는 한국은행이 대출할 때는 그것이 정부에 대한 직접 대출이 아닌 한 원칙적으로 정부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행 대출의 직접적 상대방인 기업은행이나 궁극적 상대방인 특수목적회사는 모두 정부가 출자한 회사에 불과하고, 따라서 한국은행법의 취지에 따르면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음의 적격성 범위를 기존 규정을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더 확대하는 것이 한국은행법을 준수해야 할 총재로서 적법한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의 특수목적회사에 대한 10조원 대출의 불법성(6단계)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제2단계 혹은 제5단계중 하나라도 실행 불가능하게 되면 정부안은 사실상 붕괴하게 된다. 이하에서는 정부가 제5단계까지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여 기업은행의 수중에 10조원이 확보된 것을 전제로 제6단계 실행의 불법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제6단계 실행, 즉 기업은행이 10조원을 신설 특수목적회사에 대출해 주는 데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제4단계, 즉 신용보증기금의 지급 보증이 들어가는 한 동일인 여신한도 위반의 문제는 없어진다.
비록 거액이 단일 차주에게 대출되는 것이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신용보증기금(혹은 어떤 다른 신용도 높은 기관)의 지급보증만 들어간다면 신용위험이 없어지기 때문에 동일인 여신한도 산정에서 이 대출은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업 감독규정 제3조 및 <별표 2>의 2호)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대주주 여신한도 위반 부분이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설립한 특수은행으로 원칙적으로 중소기업은행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에는 은행법이 적용된다.(중소기업은행법 제3조 제3항 및 제52조) 이중 은행법 제35조의2는 중소기업은행법이 적용 배제로 열거한 조항이 아니어서 기업은행에 그대로 적용되는 조항인데, 이 조 제1항은 은행이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에게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하여 대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특히 이 조 제7항은 은행이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의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를 지원하기 위한 신용공여를 금지하고 있다.
대주주 여신한도 규제는 매우 강한 규제여서 이를 위반하면 은행법상 가장 엄중한 처벌인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은행법 제66조 제2호)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는 정부를 매개고리로 하여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기업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가 56.84%(역시 기업은행의 주주이기도 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지분을 합할 경우 총 90.84%)를 출자한 비영리법인으로 은행법상 특수관계인이고(은행법 시행령 제1조의4 제1항 제2호), 따라서 자산관리공사가 설립하는 특수목적회사도 특수관계인이다.(시행령 동조 동항 제5호) 아울러 자산관리공사나 자회사인 특수목적회사는 모두 은행법 시행령이 열거하는 특수관계인 적용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시행령 동조 제2항)
요약하면 신설 특수목적회사는 기업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가 지배하는 특수관계인이고 은행법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에게 은행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하는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기업은행의 자기자본은 17.4조원(BIS 총자본은 18.9조원) 수준이므로 10조원의 대출은 불가능하다.
혹자는 정부에 대해 은행법 규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우선 정부에 대해서 은행법 일반 또는 제35조의2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당연히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은행법은 정부에 대해 은행법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어 이를 분명히 밝힌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행의 설립근거법인 중소기업은행법은 오는 8월1일부터는 은행법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도 기업은행에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제3조 제3항)
이 지배구조법은 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에 대한 여러 가지 상세한 규정을 담고 있는데 이것을 원칙적으로 그대로 기업은행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법 동향을 보면 기업은행의 대주주가 정부라고 해서 은행법 일반 또는 제35조의2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업은행은 자신의 사업보고서에 정부라는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을 지정하여 공시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5년도말 현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기획재정부로 되어 있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으로 표기되어 있다. 기업은행이 정부라는 대주주에 대해서도 은행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산 증거다. (아래 기업은행 사업보고서 중 '주주에 관한 사항' 부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