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의 여성혐오 조장 보도실태'를 규탄하는 20대 여성들이 모여 '우리는 기자회견女다' 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최윤석
여자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공포를, 두려움을 알아주길 바랐던 여자들은 철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남성들의 반응에 격분했다. 남성들이 섣불리 자신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단하고 여자들의 심정을 무시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더욱더 이 일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증언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당해왔던 차별과 폭력의 경험들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죽을 수 있었다', '밤길을 되찾자', '그래도 우리는 어디든 간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를 외치며 강남역에서, 홍대에서, 수원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모여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여러 매체에서 분석했듯이 이는 단순히 이번 살인 사건만으로 빚어진 현상이 아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미디어와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폭력에 대한 분노가 이 사건을 기점으로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추모 열기를 다루는 사회 주류의 반응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살아오며 몇 번이고 겪어왔던 레퍼토리였다. 여성이기 때문에 당해야만 했던 폭력,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와 방관,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세력의 역공격. 사건이 일어난 후 2주 동안 여자들은 이것을 다시 한 번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겪어왔던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억을 자극했다. 이전까지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잠겨있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놓는 자기 고백적인 글들이 SNS를 달궜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가슴을 더듬던 사촌 오빠의 손길, 길을 물으며 성기를 꺼내 보였던 아저씨, 학창시절 자신을 성추행한 담임, 자신을 폭행하고 죽이겠다 위협하던 남자친구, 매일 지하철과 길에서 마주하는 남자들의 끈적거리는 불쾌한 시선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당해야만 했던 폭력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무도 중요하게 다뤄주지 않아서 한 번도 꺼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 오히려 당한 사람이 부끄러워할 일, 덮고 넘어가야 할 일로만 여겨져 혼자만의 것으로 꽁꽁 묶어두었던 기억들, 또는 용기 있게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손가락질당하고 속해있던 곳에서 고립되었던 경험들이 '여성'이라는 깃발 아래서 공유되며 공공의 사회적 기억으로 표출되었다.
여성혐오 구조가 만든 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