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이 든 먹이를 먹고 죽은 코끼리의 사체 (출처)Chan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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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코끼리와 사람 사이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 없이 개발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아기코끼리가 배수구에 빠진 함반토타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 밀림을 밀어버리고 대형 크리켓 경기장과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었다. 수도 콜롬보로 모든 산업이 집중되는 과부하현상을 막을 제2의 항구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적 타당성과 환경적 요건을 고려하지 않은 막개발로 공항은 일 년에 고작 2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유령공항이 되었다.
코끼리 서식지 한가운데 지어진 공항에는 코끼리떼가 시시때때로 출몰한다. 공항 이용객은 하루 열 명에서 스무 명밖에 되지 않는데, 코끼리의 침입을 막기 위해 3백여 명의 군인이 상주한다고 하니, 요즘 말로 하면 참 '웃픈' 일이다.
'야생동물 피해', 동물 입장에서는 '적반하장'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민가에 들어와 농사를 망치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동물이지만, 사실 코끼리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살던 곳에 사람이 침입한 것이니, 코끼리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야생동물들도 스리랑카 코끼리와 비슷한 처지다. 시꺼먼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와 갈팡질팡하다가 사람이 겨눈 총구에 쓰러지는 영상은 잊을 만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언론에서는 멧돼지를 인명사고와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당으로 묘사하고, 정부는 '박멸','퇴치'라는 단어를 써가며 포획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멧돼지도 멧돼지대로 할 말이 있다. 겨울이면 멧돼지의 양식이 되는 도토리 등 나무 열매를 등산객이 채집해 가면서 배가 고픈 멧돼지들이 음식을 찾아 민가로 내려간다. 서울의 경우, 등산 열풍으로 북한산 일대에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멧돼지의 서식지를 침범한 것이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원인이 되었다.
멧돼지뿐 아니다. 노루든, 고라니든, 아파트, 도로를 짓는다고 산을 밀어버리고 나서 살 곳이 없어진 것도 억울한데, '유해동물'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개체수 조절'이라는 명목으로 사살 대상이 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이제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지리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니, 얼마 남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사람과 코끼리, 서로 안 싸우고 잘 살려면...스리랑카 농민들과 지역사회, 비영리단체, 정부기관 등은 저마다 코끼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끼리와 인간과의 갈등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직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코끼리의 경작지 침입을 막는 방법 중 하나는 펜스를 치는 것이다. 코끼리에게 안전한 전기펜스를 치는 방법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 설치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코끼리가 싫어하는 나무로 펜스를 치는 '바이오 펜싱(bio-fencing)'이라는 방법도 있다. 팔미라야자나무, 아가베 나무, 레몬, 라임같은 시트러스 나무 등 코끼리가 피하는 식물을 펜스처럼 심는 것이다.
또, 큰 통나무로 펜스를 만들되, 땅 깊숙하게 나무를 박지 않으면 코끼리는 흔들리는 나무를 몸으로 박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효과를 볼 수 있다. 피해지역에서는 코끼리가 먹이로 선호하지 않고, 농가 수입도 올릴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방법이다. 코끼리를 포획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방법도 시도되었으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기적인 방법으로는 서식지 풍부화가 있다. 코끼리 서식지에 코끼리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식물들을 심어서 경작지나 민가로 침입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 한다. 국립공원이나 야생동물보전지역의 면적을 넓히고, 서식지 간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생태 통로를 만드는 등 보다 지속가능한 대책이 절실하다. 야생의 코끼리를 관찰하는 에코투어리즘(Eco-tourism)처럼 코끼리 보전이 경제효과까지 가져와, 사람도 코끼리도 서로 싸우지 않고 잘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람의 미래도, 코끼리의 미래도 결국에는 사람 손에 달려 있다.
살아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 아기코끼리의 명복을 빈다. 어미코끼리도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