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제의 송탄유 채취로 인한 훼손을 간직한채 자라고 있는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길 소나무.
김현자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지난 100년 동안의 사건과 사실 19가지의 존재와 진실, 왜곡을 다뤘다. 목차를 훑다가 가장 먼저 찾아 읽은 것은 '해인사 소나무, 몹쓸 짓을 당하다-일제의 송진 채취로 훼손된 산림 잔혹사'다.
1940년대 들어 일제는 중국 대륙과 동남아 및 남양군도 등 두 곳에서 큰 전쟁을 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물자가 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중에서도 석유가 제일 문제였다. 결국 석유 대용품을 만들어 쓰기로 했는데 송진에서 추출한 송탄유가 그것이었다. 송탄유는 비누나 도료 등 생필품 원료는 물론, 군용기에도 유용한 전쟁 물자였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지역별로 할당량을 정해 조선인들들 송진채취에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전역의 질 좋은 소나무들이 칼질을 당했다. 1941년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로 연료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되면서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다.
소나무에서 송탄유를 추출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지면에서 70~80센티미터 지점에 높이 10센티미터, 길이 20센티미터 크기의 V자형 홈을 낸 후 소나무의 속결 사이로 배어나오는 생송진을 함석 등을 이용하여 받아내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가마 형태의 틀을 만든 후 그 속에 관솔을 넣고 불을 지펴 관솔에 함유된 송탄유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일제강점기에 호랑이를 비롯한 한반도의 수많은 동물들이 일제에 의해 남획되어 멸종했다는 것. 수많은 소나무들이 일본의 무모한 전쟁, 그 망상에 희생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경새재나 아산 봉곡사 일대의 소나무, 안면도 일대의 소나무 등 그 훼손 흔적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들이 우리나라 전역에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의 소나무 훼손, 그 구체적인 것들까진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훼손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그들 소나무 곁에 서 있기 때문에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긴 하다. 그런데 어떤 안내문이든, 그리고 어떤 책이든 안내문의 간략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채취과정이나 연료로 만드는 과정 등, 구체적으로, 가급 많이 알고 싶었다. 이 책은 8쪽에 걸쳐 송탄유 채취에 대해 꽤 깊이 다룬다. 어떤 연장들이 필요한지, 어떤 방법들로 채취를 했는지, 동네마다 송탄유 채취를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나,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의 불이익 등, 송탄유 채취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깊게 들려준다.
"내가 3학년, 그가 4학년이 되자 각 학년의 학급이 일제히 군대식 편제로 바뀌었다. 각 학년의 분단은 분대로, 그리고 각 학급이 소대로 개칭되었다. (…)매주 하루가 수업이 없는 근로봉사일로 바뀌었다. 그날이 되면 우리는 낫이나 손도끼에 지게를 지고 소나무가 있는 산으로 내몰리었다. 일제는 그 무렵에 벌써 전쟁 수행을 위한 자원인 유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체원료로 소나무 공이를 따서 기름을 얻어 쓰는 송탄유 채취에 우리를 동원했다.
일제가 강제한 송탄유 채취는 군 작전에 준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출발 전에 우리는 연병장으로 개칭된 운동장에 모였다. 거기서 교장의 사열을 받은 각 반 단위로 송탄유 채취가 가능한 산을 향하여 행군했다. 대열 앞에는 군기에 해당되는 각 학급의 정신대기가 나부꼈다. 그런 대열에는 행진곡을 부는 나팔수가 부는 신호에 맞추어 송탄유 채취장인 산으로 향했던 것이다."(당시 초등학생으로 송탄유 채취에 동원되었던 김용직(서울대 명예교수) 증언)
게다가 이처럼 송탄유 채취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증언까지 싣고 있다. 관련 사진도 7장이나 실었다. 여하간 덕분에 오래전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으나 알길 없던 그 갈망이 어는 정도 풀렸다. 책의 특징은, 이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그 어떤 책보다 깊이, 그리고 폭넓게 다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