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선생님은 어려운 것을 쉽게 가르쳐주신다

[가연(佳緣) ⑧]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 중학교 때 성정경 수학 선생님

등록 2016.07.18 10:15수정 2016.07.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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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 고향 구미의 으뜸 상징인 금오산 멧부리.

내 고향 구미의 으뜸 상징인 금오산 멧부리. ⓒ 박도


1950년대 시골중학교


내가 구미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대구 시내로 진학한 서너 학생만 제외하고 모두 구미중학교로 진학했다. 그 무렵 또래 학동들은 가정사정이 몹시 어려워 20~30%는 중학교를 진학치 못했다. 여자아이인 경우는 그 비율이 더 높았다.

우리 동기생들은 해방둥이로 그 전이나 그 이후보다 또래들이 적었던 탓으로 구미중학교는 명목상 입학시험은 있었지만 응시만 하면 전원 합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동들은 입시공부를 한다고 초등학교 재학 중에 요란을 떤 적은 없었다. 모내기철이나 벼 추수할 때 시골은 '부지깽이도 뛴다'고 할 정도로 바쁜 철이다. 이런 농촌학교다 보니 농번기에는 '가정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는 4~5일씩 휴업을 했다.

이러한 농촌학교였기에 중학생들도 대체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면학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부 집안형편이 나은 몇 학생은 대구 시내 고교로 진학할 처지이기에 예외였지만, 당시 구미농업고등학교를 진학할 학생들은 공부와는 거의 담을 쌓다시피 지냈다. 당시 구미농고는 학급 정원이 60명이었지만 학년 재학생은 20~30명으로 늘 정원부족사태를 빚었기에 중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입학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다가 당시 구미중학교는 재정이 빈약한 가난한 사립학교인지라 과목 상치교사(전공과목이 아닌 교사)가 상당수였다. 중1때는 생물 선생님한테 영어를 배웠고, 도덕 담당 교감선생님한테 수학을 배우는 등, 상치교사로 교과를 메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학교는 학생 정원도 채우기도 힘들 뿐더러 등록금 미납자가 속출하여 교사들 월급지급도 어려운 처지에 전공교과 자격증 교사를 골고루 배치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a  구미중학교 제13회 졸업생, 교직원 일동(1961. 3. 성정경 선생님은 제2열 왼쪽에서 세번째, 필자는 제6열 여덟번째다). 그 무렵 시골학교에서는 졸업앨범이라는 게 없었고, 이런 사진이 유일한 졸업기념사진이었다.

구미중학교 제13회 졸업생, 교직원 일동(1961. 3. 성정경 선생님은 제2열 왼쪽에서 세번째, 필자는 제6열 여덟번째다). 그 무렵 시골학교에서는 졸업앨범이라는 게 없었고, 이런 사진이 유일한 졸업기념사진이었다. ⓒ 박도


전갱이 선생님


그런 어려운 가운데도 국어의 김영호 선생님, 수학의 성정경 선생님, 역사 곽도규 선생님, 과학의 김희용 선생님, 영어의 노상태 선생님 등은 대단한 실력파로 교과지도를 참 잘해주셨다. 특히 2, 3학년 때 지도해 주셨던 성정경 수학 선생님의 지도방법은 매우 뛰어났다.

성 선생님의 별명은 '전갱이'였는데, 그것은 선생님의 함자에서 유래했다. 성 선생님 자신도 그 별명을 스스럼없이 쓰셨다.


성정경 선생님은 반의 학생 가운데 한 학생을 희화화(戱畵化)하여 코미디언으로 만든 뒤, 전체 학생들에게 수학의 기초를 매우 쉽게 이해하도록 유도했다. 우리 학급에서는 '고재정'이라는 친구가 그 대상으로 그의 형은 우리보다 7년 선배인 고재호였다. 성 선생님은 그를 일부러 '고재호'로 불렀다. 그 '고재호' 선배는 코미디언 기질이 농후한 분으로, 당시 구미 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다소 우스꽝스러운 인물이었다.

"어이, 고재호!"
"네, 선생님!"
"어제 구미 장 생선가게에서 전갱이 한 마리 얼마 하더노?"

성 선생님의 질문에 고재정 친구는 그 장단에 맞춰 넉살 좋게 대답했다.

"100환 가든데요."
"그래? 좋다. 고재호가 어제 장날 생선가게에서 300환을 주고 전갱이 세 마리를 사고 …"

성 선생님은 그 이야기에 빌어 인수분해를, 방정식을, 삼각함수를 아주 재미있게 그 기본 원리와 개념을 매우 명쾌하게 가르쳐 주셨다. 수학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내가 서울 고교 입시 때 전기에는 실력부족으로 낙방했지만, 그래도 후기에서 턱걸이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성정경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수학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교시절 수학시간 선생님에게 매를 덜 맞은 것도, 그리고 대학입시에서도 학원 한번 등록치 않고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원동력은 모두가 중학교 때 성 선생님께서 수학의 기초를 잘 잡아주신 덕분이었다. 이후 대학시절 중고교생 가정교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중학교 때 다져진 기초 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미중학교 재학시절 이따금 장터에서 성정경 수학 선생님을 뵈면 얼굴은 늘 볼그레했다. 아마도 장터 주막에서 졸업생들이나 학부모에게 붙들려 막걸리 잔을 들이키신 모양이었다. 그때 시골 중학교 선생님들 가운데 재학생을 방과 후 별도 돈을 받고 가르친 선생님은 한 분도 없었다. 그분들은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모든 정열을 쏟으셨다. 그 보상은 막걸리 한 잔이 딱이었다.

어느 교육학자의 말이다.

"유능한 선생님은 어려운 걸 쉽게 가르치고, 무능한 선생님은 쉬운 것 어렵게 가르친다."

이따금 성 선생님이 떠오르면 그 말도 함께 되새겨진다. 그리운 그 선생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
#수학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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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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