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거세다. 사진은 지난 6월 25일 시청 광장에서 1만여명이 운집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퍼포먼스의 한 장면.
이광국
지난 주, '(99%의)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교육부 관료의 발언은 전국민적 공분을 샀지만, 필자에게는 학교교육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발언에 대한 분노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내놓는 기만적인 정책들을 떠올려 보면, 차라리 그는 솔직한 편이었다고 해야 할까.
따라서 비판의 화살은 그보다 심한 기득권층에게 향하는 것이 더 온당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4대강을 다 죽여 놓고 '4대강 살리기'라고 홍보하거나,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고는 사실상 이와 거리가 먼 정책을 펼치면서도 이를 '창조경제'라는 말로 덧칠하는 사람들은 '개·돼지'들로 하여금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교육부 관료는 고위층의 여러 모습 중 '악'에 해당하는 것을 뚜렷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준 셈이다.
그런데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출발선상이 다른데 (사회적 간극이)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다'는 그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현재 학교의 현실이기도 하다.
최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선언한 '야자 폐지'에 대한 반대 논거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야자 폐지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반대의 주된 근거로 '대입 현실'을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관련기사 :
하윤수 교총회장 "'야자' 폐지는 포퓰리즘...숨은 의도 있어"
대입 준비로 인해 야자를 존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학력이 이미 상당한 비례관계를 보이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하여 대다수 '민중'들보다 더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살라는 비교육적 주문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운동장이 기울어졌기에 이를 고쳐야 한다는 비유는 의미 있다. 그런데 현실은 또 다르다. 아무리 수리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운동장에서 '경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는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수리작업과 더불어, 갈리는 승패 속에서 패한 이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을 병행하면 되지 않겠는가.
예컨대, 의사와 경비원의 급여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둘 중 어느 한 쪽이 그 차이로 인해 '행복할 권리'까지 박탈당하지는 않도록 하는 '1만원 최저임금제'와 같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공부 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라는 말로 학생들을 겁박하는 대신에 적어도 '공부를 못해도 자신의 적성을 계발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다'라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