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싫어했던 연꽃 벽화를 1년 후 올빼미 벽화로 다시 작업한 후 모습. 사진 속 사람들이 카페 봄봄을 이끌어가고 있는 봄봄의 매니저들이다.
봄봄
동네 주민들의 열화 같은 요청에 봄봄 매니저들은 1년에 두 번씩 벽화를 그리고 있다. 두 번째 벽화는 삭막한 고시텔 벽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2014년 여름에 그린 세 번째 벽화의 캔버스는 주민센터 옆 공용주차장 담벼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주차장 맞은편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왔다.
"그림에 왜 연꽃이 들어가는 거죠? 그건 불교를 상징하는 거잖아요. 나는 기독교인데 연꽃 벽화는 안 그렸으면 좋겠어요."열심히 연꽃을 그리던 중학생이 그 주민의 말에 발끈했다.
"저도 교회 다니는데 연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아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에 속상해했지만 그 주민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때 매니저들은 다른 지역에서 들었던 벽화 일화가 떠올랐다. 예술가들이 주민들에게 벽화로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설문을 했더니 그냥 깨끗한 흰색으로 그려달라는 의견이 많아서 그냥 흰색 칠만 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차, 우리가 골목에 사는 주민들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벽화작업을 했구나.'뒤늦은 깨달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미 연꽃 벽화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매니저 규카소가 총대를 메고 그 주민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창조주께서 만든 피조물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연꽃이 정 싫다면, 내년에 다른 벽화로 다시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이 고생해서 그린 벽화니까 당분간만 좀 지켜봐주세요." 다행히 대화는 잘 풀렸고 연꽃벽화는 피어났다. 그로부터 1년 후 연꽃벽화는 올빼미 코끼리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번에는 주민에게 미리 도안을 보이는 작은 소통작업을 먼저 했다. 벽화를 그리는 날, 그 아주머니는 음료수와 함께 그 집 나무에서 수확한 자두, 사과, 감 들을 한 아름 안고 찾아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벽화는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을로 통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조금만 신경 쓰니 소통의 방정식은 금세 풀렸다. 막힘없이 통하니 골목에는 계속 벽화가 늘어가고 있다. 편의점 벽에도, 교회 벽에도, 고시텔 벽에도 벽화 꽃들이 피어있다. 옆 골목 천지신명당에서도 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해와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벽화 그리기에 재미를 붙인 골수팬들도 나타났다. 매번 벽화를 그릴 때마다 참여했던 영등포 영원중학교에는 벽화동아리가 생겼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벽화를 그릴 때면 찾아왔던 한 고등학생은 벽화 그리기를 배우고 싶다고까지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벽화를 그리러 왔다가 카페 봄봄 회원이 된 동현 엄마는 지금은 봄봄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다. 이제 벽화를 보면 사람들이 떠오른다.
오는 7월 16일에 봄봄은 7번째 벽화를 그린다. 이번에는 또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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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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