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억울하다는 편지 계속, 이젠 사회가 도와야"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334] 박준영 변호사

등록 2016.07.19 11:43수정 2016.07.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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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지난 8일 삼례 나라 슈퍼 살인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전주지법 제1재판부(재판장 장찬)는 "피고인들이 새롭게 제출한 증거들은 재심대상 판결이 사실인정의 기초로 삼은 증거와 함께 고려할 때 재심대상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으므로 다른 재심청구사유에 관해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한다"고 재심 개시 결성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한 3인조 강도가 주인 할머니 유아무개씨의 입을 틀어막아 숨지게 한 뒤,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8일 후 숨진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임아무개씨와 최아무개씨, 강아무개씨 등 3명을 붙잡아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형이 최종 확정된 지 한 달 만인 같은 해 11월 부산지검이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용의자 3명을 모두 붙잡아 자백을 받았다. 하지만 진범의 자백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각각 징역 3~6년을 복역했다.

이후 임아무개씨 등은 경찰의 강압 수사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해 11월 전주 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개시 결정을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를 지난 12일 수원에 있는 그의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재심 결정의 의미와 우리나라 재심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너무나 긴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일이었다"


 법원의 재심 개시가 결정된 지난 8일 '삼례 3인조'와 박준영 변호사(맨 왼쪽)가 전주지법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7.8
법원의 재심 개시가 결정된 지난 8일 '삼례 3인조'와 박준영 변호사(맨 왼쪽)가 전주지법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7.8연합뉴스

- 법원이 지난 8일 삼례 나라 슈퍼 살인 사건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는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삼례 사건은 장애가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본인들의 법적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허위자백을 했던 사건이에요. 사건 자체의 모순도 많지만, 그 후에 진범으로 지목됐던 사람들에 대한 수사가 있었고 그들이 자백했는데도 불구하고 무혐의 결정을 내린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진범의 자백이 아주 구체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진범이 법정에서 자백하고 유가족이나 피해자를 찾아가서 사죄까지 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재심은 당연하고, 무죄를 받는 것도 당연한 사건이죠. 그러나 너무나 긴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건 우리 사법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생각되어 안타깝죠.


재심 사건을 환영하고 앞으로 재심과정에서 억울한 사람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해야죠. 또한 왜 이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됐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 지난 11일 검찰이 항고를 포기했어요.
"피고인과 대립하는 당사자가 검사잖아요. 그리고 하급심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불복할 권리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잖아요. 그것은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데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고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노력도 해야 하거든요. 공익의 대표자 관점에서 본다면 무죄가 분명하고 확실한 사건에서 항고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서 항고 안 한 게 드물고 저희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을 했어요. 항고를 안 하니 저희는 반가웠죠. 억울하게 옥살이한 재심청구인들 입장에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 공소시효가 지났는데도 재심 결정이 의미가 있나요?
"공소시효라는 게 우리 법에 있기는 하지만 길지는 않았어요. 이 사건 당시 강도치사사건은 공소시효가 10년에 불과해서 2009년에 공소시효는 이미 끝났죠. 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의미는 진범을 처벌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공소시효가 끝난 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특히 이 사건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은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 재심 결정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진실은 발이 달려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죠. 아무리 덮으려 해도 반드시 밝혀지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있는 모습도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다, 이게 이 사건의 의미 같아요."

- 이 사건은 어떻게 관심 가지게 되셨어요?
"우연히 이 사건에 대한 십수 년 전 방송을 봤어요. 현장 검증 모습을 보는데 맞는 장면 속에 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억울한 얼굴을 봤어요. 그래서 이 사건에 관심 가지 게 됐어요."

- 억울한 얼굴이라 관심을 가졌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사건에 대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기록인데, 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억울한 것을 알 수 있냐고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미 방송에서 억울할 수 있다고 보도가 된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영상 속의 현장 검증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때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또 맞는 모습과 수동적으로 재연하는 부분이 이례적이었어요. 진짜 범인은 안 그러거든요. 삼례 친구들이 두려움에 떨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제가 볼 때 억울한 사람이었어요."

- 변호사님은 계속 재심 사건을 맡으시고 계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이런 걸 하고 싶지는 않았죠(웃음). 기자님도 인터뷰를 계속하시다 보니 누굴 만날 것인가에 관해 관심이 생기고, 항상 기사를 볼 때도 '이 사람을 만나면 의미가 있겠다'는 관점에서 기사를 보시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제가 처음 재심 사건을 접하게 된 수원 노숙소녀 사건 이후 시사 프로그램이나 언론에 어떤 기사가 나오면 내가 재심을 도울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재심 사례를 제가 찾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거죠."

- 하지만 재심사건은 돈벌이가 안 되는데.
"관심 있으면 계속하게 되잖아요. 저는 아무리 돈벌이가 되더라도 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 제가 끌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분야는 성과가 나다 보니 성취감도 있고, 또 가장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못 잊겠어요. 측은지심이 발동하면 거기서 계산적으로 살 수는 없게 되더라고요. 물론 돈벌이는 해야겠죠. 근데 돈벌이 때문에 측은지심의 마음을 외면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제가 젊으니 돈을 벌 기회가 오겠죠."

- 재심 사건 말고도 사건을 맡으시나요?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 수입이 있어야겠죠. 일반 사건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닌데 요즘에는 거의 못해요. 사건 수임을 의도적으로 안 하기도 해요. 재심 사건이 적체되어 있어서요. 수입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죠. 그러나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가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수입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황으로 가는 건 맞는데 아직 절벽으로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끌고 가는 거죠."

"재심 돕는 사회적 시스템 만들어야"

 박준영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이영광

- 우리나라 재심 절차 제도의 문제점도 있을 텐데.
"사법정의를 논할 때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정의)을 얘기 하죠. 사법의 기본 원리라고 합니다. 그것은 법은 안정성이 있어야 하고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구체적인 정의 실현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우리 재심제도는 구체적 정의 실현의 관점보다는 법적 안정성을 우선시 하니 재심이 잘 안 돼요. 또한 억울한 사람이 재심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문호가 너무 적다 보니 구제를 받는다는 게 너무 힘들죠.

재심 제도가 활성화되려면, 재심사유를 폭넓게 해석하고 재심을 청구하는 데에서 법적인 조력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시국사건 재심을 많이 도왔듯이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을 도울 수 있는 국가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사건을 뒤집어 봐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건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우리 형사사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서 국가인권위 산하에 기구를 두는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이 도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법적인 보완도 필요하지 않나요?
"필요하긴 한데 재심이라는 제도 자체가 법적으로 보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왜냐면 재심 사유 자체가 우리 형사소송법상 상고 이유 중 하나로 되어 있어요. 그러나 재심 사유를 넓히는 쪽으로 법을 개정을 한다는 건 상고 이유를 넓히는 개정과 연결 되다 보니 현실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재심사건을 많이 늘려서 다시 판단 받을 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국가의 예산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법관의 숫자도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억울한 재판을 받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거든요. 사법 자원의 합리적 배분 관점에서도 재심 제도는 냉정히 봐야 할 부분이 있어요.

저는 오히려 재심 활성화를 법관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해요. 물론 100건의 사건 중에서 한 건을 구제하기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100건의 사건을 검토하기 위해 사법자원을 집중한다면, 다른 사건을 부실하게 검토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요. 이건 어려운 문제라서 토론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나 토론 문화가 형성 안 되어서 문제죠."

- 재심 제도 개선을 위한 꿈이 있다고 들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재심을 돕는 기관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전국에 교도소가 50군데 있는데 억울하다는 편지는 계속 오고 형을 마친 후에도 억울하다고 주장하시면서 도와달라는 호소를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사람의 역량은 한계가 있잖아요. 우리 사회가 재심 제도를 돕는 시스템이 탄탄하게 마련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가진 꿈입니다."

-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단계를 밟아가는 상황이에요. 대한 변협 재심 소위원회에서 제가 활동하는데 그곳을 통해 접수된 사건이 꽤 있어요. 그런 사건들을 정의롭게 해결하고 좀 더 힘을 키워서 국가 기관에서 재심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 재심 사건을 맡아 하시면서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겪을 때도 있고, 자기 노력에 비해 행운이 따르는 사람도 있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억울한 일을 겪는 것이 우리 사회 시스템이 운용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그걸 구제하려는 노력은 진지하게 전개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제가 경험한 재심사건들을 놓고 보면 그런 노력을 제대로 했었느냐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시민들이 재심제도를 바라보면서 누구든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곧 나의 일이라고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최근 재심이 여러 건 개시됐어요. 재심이라는 것은 수사나 재판절차에서 관여했던 사람들의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억울한 사례가 나온 것이거든요. 그러나 재심이 되어 무죄판결이 나도 그 재판이나 수사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잘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과감하게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누군가 잘못을 인정했을 때 우리 시민이 관용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박준영 #삼례 나라 수파 #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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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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