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정문 앞에서 성신여대 총학생회와 청년유니온, 최저임금연대 회원들이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책임 있는 논의와 최저임금인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윤석
18일 <조선일보>는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이 쓴 "격차는 惡(악)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해당 칼럼에서 현 원장은 시장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격차"의 존재에 대해 분석했다. 그가 짚고자 한 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의 격차 수준이 심각한가.
둘째, 격차는 사회적으로 나쁜 악인가.
해당 칼럼에 달린 포탈 댓글들은 하나같이 현 원장의 논리를 비판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미 많은 경제 및 사회학자들에 의해 반박되고 수정돼온 신자유주의 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 속 새로운 시장경제 패러다임으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현 원장은 일방적인 시장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① 우리나라 소득불평등은, 전 세계와 비교할 때 중간 수준이다. 이런 과학적 실증 연구 결과를 두고도, 우리 격차 수준이 심각하다고 과대 포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책 오류를 일으킨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니계수의 경우, 지난해 기준 0.295로 OECD 국가 중 중간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OECD의 가계소득 지니계수 통계는 한국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근거로 산출되는데,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통계청의 해당 조사가 우리사회의 불평등도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는 데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김낙년·김종일 교수는 2013년에 발간한 논문 "한국 소득분배 지표의 재검토"에서 통계청의 조사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누락됐고 고소득층의 금융소득 또한 과소보고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득이 낮은 가구의 소득은 제외됐기 때문에 해당 지니계수로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수준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니계수의 이런 문제점을 보정하면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2010년에 0.415로 높아져 OECD 국가 중에서는 소득불평등이 5번째로 심한 나라에 속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보수 진영 측에서 재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 원장이 우리사회의 소득 격차가 중간 수준이라고 피력하는 데 근거로 활용한 수치 역시, "과학적 실증 연구 결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소득 격차 정도를 나타내는 또 다른 대표적 지표인 '소득 계층 간의 비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임금소득의 최하위 10% 대비 최상위 10%의 임금 비율이 2013년 4.7배로, OECD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소득 격차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얼마든지 더 있다. 격차 수준이 과대 포장되고 있다는 현 원장 말의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다.
② '양극화'란 용어는 우리 소득 격차 수준을 평가하는 이성적 용어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대결 구도로 선동하는 기제일 뿐이다.
우선 소득격차, 즉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는 다른 개념이다. 소득불평등 지수는 근본적으로 분포의 산포도(변량이 분포의 중심 값에 흩어진 정도)를 나타낸다. 곧 불평등 지수들은 각 계층의 소득 수치들이 전체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있는 지에 집중하기 때문에, 중산층의 몰락과 같은 현상은 포착하지 못한다(신동균, "소득분포의 양극화: 개념과 실태", <노동리뷰>, 2006).
반면에 소득분포가 양극화된다는 것은, 중간 소득 계층이 무너져 하위집단과 상위집단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각 집단이 특정 값으로 집약되는 현상까지 포함한다.
현 원장은 양극화라는 표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중류층 없이 부자와 빈자로 양극화됐다는 인상을 심기 때문에 선동적 용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극화는 그러한 "인상"을 심고 있기보다, 우리 사회가 처한 진짜 "현실"에 가깝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위소득의 50~150% 집단에 속하는 중간 소득층 비중은 1997년 이전까지 75% 전후의 비중을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65%대까지 떨어졌다. 중산층 70% 재건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지만 계속해서 중산층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고소득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하게 커졌다. 국세청의 개인 종합소득 자료를 근거로 추산한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 계층 상위 10%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9.2%에서 2012년 44.9%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중산층 비중이 감소하는 대신 상위 10%의 소득의 비중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수치들은,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드러낸다.
공정 경쟁 없는 격차는 나쁩니다
③ 격차가 과연 나쁜 것인가…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유하려는 행동은 인간의 본성이다. 격차를 가지는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의 경제 자유를 최대한 허용함으로써, 개인 뿐 아니라 사회도 함께 발전한다.
요컨대 격차라는 유인 체계 속에서 개인이나 기업은 열심히 경쟁하고, 그 결과 사회는 발전한다는 논리다.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해당 논리가 성립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경쟁이 "공정한 경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주창했던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조건으로 낮은 진입장벽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동등한 관계에 위치할 것을 제시했다. 공정한 규칙 하에 시장이 운영될 때 모두가 노력의 대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시장은 공정하다는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청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밀어내기 영업, 납품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대기업의 행태가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대기업은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골목 상권까지 진출하고 있는 상태다. 실제 2013년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 중소자영업자의 매출 감소 원인의 64.7%는 과당경쟁이었다. 대기업 중심의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는 성장의 열매가 일부에게만 돌아갈 위험이 높다. 재벌 100대 기업의 2013년 순이익의 경우 당시 한국 기업의 총 순이익의 59.6%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시장경제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 구조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격차가 과연 나쁜 것인가? 공정한 경쟁 속에서 발생한 격차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불공정한 경쟁 구조 속에서 커지는 격차다. 현 원장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전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자유 경쟁과 격차의 효능만을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④ 정치권에서 격차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정책으로 완화하려 하면 할수록 경제 활성화는 멀어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대표적 정책인 '경제 민주화'는… 사실 서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주는 정책 방향이다.
소득 격차 완화가 경제 활성화를 막아 서민에게 고통을 준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경제 연구에서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되레 방해가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유경제시장을 신봉하는 IMF마저, 재작년 광범위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낙수효과의 종언'을 고했다.
전체 소득 대비 상위 계층이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커지면 경제성장이 낮아지지만, 오히려 하위 계층의 소득 비중이 커지면 경제성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IMF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불평등이 커지면 하위 계층의 경우 인적 자본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대 간 이동성이 낮아진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돼 경제사회적인 역동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선진국에서도 소득 불평등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의 소득보다 가계의 소득을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목된 방안 중 하나다. 소득 격차 완화가 서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책이라는 현 원장의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안톤-바빈스키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다. 두뇌 손상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으면서도 자신이 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증상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면들이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경쟁과 승자독식을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이다. 최저 시급이 결국 6470원으로 결정됐다는 기사 다음에 접한 현 원장의 칼럼이 더욱 불편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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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6470원' 소식 직후 이 글을 봤다,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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