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와 '적다'는 어떻게 다를까

[신간] 최종규의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

등록 2016.07.21 14:39수정 2016.07.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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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길 때 쓰는 말이 있습니다. '적바림'이 그것이죠. 왠지 낯선 느낌이 드시나요? 물론 '적다'는 말과 같은 뜻이죠. 다만 '적바림'은 짧게 옮긴다고 할 적에 쓰는 말이고, '적다'는 그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말이죠. 요즘 많이 쓰고 있는 '메모'라는 말이 적바림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적다'는 말과 '쓰다'는 말에도 차이가 있을까요? 물론 있죠. '쓰다'는 말은 남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기를 새로 지어내는 걸 가리키고, '적다'는 말은 받아서 옮기는 수준을 뜻하는 말이죠. 더욱이 '쓰다'와 '써넣다'는 것도 비슷한 말 같지만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써넣다'는 말은 어떤 칸에나 자리에 뭔가를 채우는 일을 뜻한다고 하죠.


"'대수롭다'는 '크게 여길 만하다'는 뜻으로는 '대단하다'와 비슷하게 쓰이는 낱말입니다. 그런데 '대수롭다'는 흔히 '대수롭지 않다'라든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와 같은 꼴로 씁니다. '변변하다'도 '대수롭다'와 비슷하게 '변변하지 않은 얼굴'이나 '변변하지 못한 대접'과 같은 꼴로 흔히 써요. '대단하다'는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쓰고 '그렇다'는 느낌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씁니다."(113쪽)

책겉표지 최종규의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
책겉표지최종규의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최종규의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실 '대수롭다'는 말이 한자말인 '중요하다'와 똑같지만 사람들은 '대수롭다'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죠. 그렇게 안 써 버릇하기 때문에 '대수롭다'는 말이 좋은 우리말인데도 그 쓰임새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죠.

사실 최종규씨가 이 책을 펴낸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쓰임새가 줄어들고 있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우리말을 될 수 있는 한 살려보고 더 많은 쓰임새를 되찾도록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한국말 가운데서 똑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다른 말 1100가지 낱말'을 '264가지 비슷한 말'로 가다듬어 엮었습니다. 이 책을 펴내는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아 부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겠죠.

이 책이 좋은 것은 비슷한 말이면서도 다른 뉘앙스를 지닌 그 실례를 하나씩 들어주고 있어서입니다. 이를테면 '둘레'와 '언저리'가 비슷한 낱말 같지만, 각기 지닌 의미와 함께 실제로 쓰인 예들까지도 써 넣고 있습니다. 또한 '들'과 '들판'과 '들녘'과 '벌'과 '벌판'은 어떻게 각각 다르게 쓰이고 있는지도 여러 예들을 통해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푸성귀'는 '나물'과 '남새'를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나물'은 들이나 숲에서 스스로 돋는 풀을 가리킵니다. '남새'는 사람이 따로 밭에 심는 풀을 가리킵니다. '남새'를 한자말로는 '채소'라 하며, 일본 한자말로는 '야채'라고 합니다. '푸성귀·나물·남새'는 사람이 먹는 풀을 여러 가지로 살펴서 가리키는 이름이고, 지구별에서 돋는 푸른 빛깔이면서 부드럽고 물기가 많으며 흙에 뿌리를 내리는 목숨을 '풀'이라 합니다.(434쪽)

'남새'라는 낱말은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들에서 마구 자라는 풀과는 달리, 사람이 밭에서 기르는 '채소'를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라는 게 너무나도 생경했죠.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이 책 뒷부분에 보면 '흉터'와 비슷한 말로 '생채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그것 역시 비슷한 말이면서도 전혀 색다른 뜻을 지니고 있음도 알려주죠.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 온갖 누리집이 판을 치는 세상에, 손으로 직접 하나씩 하나씩 작업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니, 어쩌면 바보스러우면서도 이렇듯 우직하지 않았으면 결코 거두지 못할 열매였지 않나 싶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지 싶습니다. 힘들겠지만, 앞으로도 책상머리 맡에 두고 살펴볼 수 있는 '좋은 한국말 사전'을 찬찬히 더 많이 펴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 새롭게 살려낸 한국말사전 , 최종규 (지은이), 철수와영희, 2016-06-21, 25,000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철수와영희, 2016


#'둘레'와 '언저리' #남새와 푸성귀 #적바림 메모 #대수롭다 #변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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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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