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이 통하는 군복무, 아직도 여전하다

[주장] 누군가에게 병역의 의무는 선택적 권리가 된다

등록 2016.07.21 15:53수정 2016.07.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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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진압의경 시위진압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경찰
시위진압의경시위진압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경찰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는 20년 전 의무경찰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의경 입대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라고 하지만 예전에도 지금 못지 않았습니다. 외출, 외박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월급도 몇 천 원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피 끓는 젊은 혈기에 사회와 단절된 병영생활을 하지 않고 일반 시민들과 매일 접하며 다소 자유로운 군 생활을 기대했습니다. 육군으로 입대한 친구들의 가끔씩 있는 시샘 어린 조롱만 견디면 의경은 갈 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자원입대했습니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훈련병이라는 신분을 감안하더라도 학력과 나이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말을 놓고 동기로 지내는 외형적 평등이 좋았습니다. 환자 이외에는 훈련이나 불침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평등이 깨지는 것을 보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경찰학교로 이동해 경찰 기본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수시로 생활관 행정실 조교들이 특정 교육생들에게 행정실로 내려오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행정실에 갔다 오는 동기들은 대부분 '빽'이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인 동기도 있었고, 아는 사람이 고위 경찰인 동기들은 부지기수였습니다. 행정실에 다녀오면 상당수가 불침번이나 외곽 경비 같은 번거로운 일은 열외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저도 혹시 아는 경찰이 있나 부모님께 전화했지만 시골 파출소에서 말단 경찰로 근무하는 7촌 당숙 이외에는 없어서 좌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빽'이 통하는 의무경찰의 자대 배치


의경이 좋은 점은 경찰학교에서 훈련성과나 시험 성적이 좋으면 원하는 지역과 보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빽'이 있는 사람을 우선 배치한 후에 적용되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척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운 좋게 높은 등수를 차지하여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지만 자대 배치는 의경지원자라면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기동대였습니다. 자대 배치받는 날부터 고된 진압훈련과 가혹한 내무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수시로 시위 현장에 출동했고 경찰버스에서 잠들고 식사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구타와 얼차려는 하루를 마감하는 필수 일과였습니다.


가끔 훈련소 동기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면 '빽'이 있는 동기들 근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방경찰청에서 신문스크랩을 하는 동기, 운전병으로 일하며 자주 외박을 나가는 동기, 경찰서 행정 보조로 편하게 일하는 동기 등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중고참이 되어 제가 근무하는 기동대 대원들 신상을 파악해 보니 소위 '빽'이 있는 대원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끔 학벌 좋고 '빽'이 있는 대원들이 들어오면 몇 달 지나지 않아 상급기관으로 전출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고참 중에 단 한 명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경찰 간부였는데, 기동대에 남아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대 배치 중에 동명이인이 있어 오류로 기동대에 왔다고 합니다. 그 사람 빼고는 대부분 '빽'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병역특혜

의무경찰로 근무하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의 운전병으로 근무하는데 석연치 않은 배치 과정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병우 수석의 아들은 복무 두 달여 만에 서울청 내 꽃보직으로 전입을 했습니다.

원래 근무했던 정부서울청사도 편한 보직에 속하는데 그보다 더 편한 서울청의 운전병으로 옮긴 게 '빽'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은 일반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 재직당시의 기자회견 모습
우병우 민정수석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 재직당시의 기자회견 모습오마이뉴스

특혜 의혹에 대해 우병우 수석은 "아들 상사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전화한 적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부인했습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우 수석이 의경인 아들의 상사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는데, 서울경찰청 차장은 인사 때마다 파일이 올라가는 최고위급 간부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더구나 우병우 수석 아들의 전출은 이상철 당시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철 차장이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승진한 것을 두고 아들의 보직을 매개로 하여 서로 주고받기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20여 년 전 제가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때 '빽'이 있는 젊은이들은 그 '빽'을 써서 다 좋은 데로 빠졌습니다. 육군이나 공군, 해군 등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20여 년이 흐르고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으나 그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돈 있고 권력을 가진 집안 자제들은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갖은 방법을 써서 군대를 가지 않으려 합니다.

군대에 가더라도 '빽'을 써서 좋은 보직을 받아서 편하게 군 생활을 합니다. 반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쓸 '빽'도 없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전방 철책에서 해안 경비초소에서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 묵묵히 군 생활을 견디어 냅니다.

변하지 않는 불평등의 사회

분명 병역의 의무는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지는 의무입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에 의해 그 의무의 형평성이 차이가 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육부 고위 관리가 말한 '개돼지'에 속하는 일반 국민에게는 의무이고 1%의 누군가에게는 선택에 가까운 의무라면 그건 상식이 아닙니다.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사회생활의 첫 관문인 군복무에서부터 차별과 불평등의 존재를 알아갑니다. 그리고 전역 후에는 그 차별과 불평등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것을 차츰 알아 갑니다.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회구조에 무력감을 느끼는 게 저만의 감정은 아니겠지요?
#병역특혜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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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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