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도착,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6.7.15
연합뉴스
한국 정치의 최고 책임자를 대통령(大統領)이라고 부른다. 이 말을 듣고 쓸 때마다 불편하다. 침이 튈 만큼 발음도 드세지만, 무엇보다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언어기에 그렇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도 일본도 쓰지 않고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이상한 언어다. 어쩌다 한국에서는 '크게(大) 거느리고(統) 다스린다(領)'는 의미를 지닌 어마어마한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크게 거느리고 다스린다?
이 말은 본래 19세기 중반 에도시대 말기에 일본에 통상을 요구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President, 즉 '아메리카 연합국가'(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 일본에서 위압감을 가지고 조어해냈던 말이다. 가령 "일미수호통상조약"(日米修好通商条約, 1858)에 "아메리카합중국대통령"(亞米利加合衆國大統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때 大統領은 서양식 행정부 최고 지도자에 붙여진 President의 일본식 번역어인 것이다.
당시 신사유람단의 일원이었던 이헌영의 여행보고서 「일사집략」(日槎集略, 1881)에 "신문을 보니 국왕을 지칭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총에 맞아 상해를 입었다더라"(新聞紙見 米國大統領卽國王之稱被銃見害云)는 표현이 나온다. 미국의 大統領을 국왕에 해당하는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당시 한국에서 大統領은 익숙한 용어가 전혀 아니었다. 가령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1882)에서는 '프레지던트'를 중국에서 음역한 대로 "伯理璽天德"(백리새천덕)이라 표기하고 있다. "伯理璽天德"이 미국의 President는 물론 서양식 국왕의 의미로 한동안 쓰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미국이나 서양의 최고 지도자를 大統領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大統領이라는 표현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고, 고종이 미국의 최고 지도자를 大統領으로 인식했다는 『승정원일기』의 기록도 몇 차례 나온다.
1919년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설립된 '대한공화국 임시정부', 이른바 '한성정부'에서 대통령(손병희), 부통령(박영효), 국무경(이승만) 등의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물론 미국식 정치제도가 성립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미국식 대통령이라는 말이 낯익게 된 것은 거의 이승만의 영향이다.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자임하면서 안창호가 나서서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노령(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등과 통합을 시도하는 과정에 '한성정부'에서는 이승만에게 집단지도체제의 지도자인 '집정관총재'(執政官總裁)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과 친했던 이승만은 자신의 직함을 영어로 President로 표기하면서 스스로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자임했고, 임시정부의 정치체제를 미국식 대통령제로 몰아갔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남한 단독정부 체제가 대통령 중심제로 정해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president의 의미와 취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본래 president는 영국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 위원회의 위원장인 presiding officer에 기원을 두는 말이라고 한다. 케임브리지 출신으로서 하버드 대학의 head였던 헨리 던스터(Henry Dunster)가 자신을 하버드의 President로 규정하면서 이 용어가 미국 대학가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그 뒤에는 아메리카대륙의 13개 영국 식민지역 대표 55인이 결성한 대륙의회 대표를 President라고 부르면서 미국의 정치적 언어가 되었다. President는 일종의 회의체 구성원들이 의회 대표를 아래로부터 선출해 만든 자리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President의 번역어로 일본에서 조어된 大統領은 수직적 위계질서가 담긴 하향적 언어다. 일본에서 무사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통령(統領)이라는 군사용어가 있기도 했지만, 어쩌면 일본인의 눈에 여러 나라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큰 지도자라는 위압감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든 大統領은 위에서 아래를 다스린다는 의미와 행위가 중첩된 권력적 언어인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정치제도가 달랐던 일본 정치에서는 적용된 적이 없던 직함이다. 중국에서도 19세기 중반 President의 번역어로 '총통'(總統), '총통령'(總統領) 등이 쓰였지만, 이 역시 중국 정치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현재 대만에서 '총통'(총괄하여 다스림)이라는 직제와 명칭을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에서 쓰는 '주석'(主席)이 용어상으로는 더 민주적이다. 이들 명칭에 비해 '대'통령은 통치의 양적인 측면이 더 부각된 언어이자,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정신에는 어울리지 않는 권위적인 호칭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권위적 호칭'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바꿀 수 있을까. 요사이 민회(民會)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시민이 개인들의 주권을 확보하고 정치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주권을 특정인에게 몰아주어 권력을 확대하고 정당화시키는 대의정치 체제가 아니라, 분권과 자치에 기반한 민간 주도의 사회 개조 운동이기도 하다.
만일 민회가 거국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거기에도 최고 책임자(권력자가 아니라!)가 있기는 해야 할 텐데, 그 책임자를 민회의 장, 그런 의미의 민장(民長)이라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이때의 '민장'은 개인의 주권을 온전히 보장한 직접민주주의 체제의 유지에 책임이 큰 사람일 것이다. '장'(長)에 담긴 권위성이 부담스럽다면 더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명칭도 생각해볼 일이다.
군림하지 않고 그저 대표하는 호칭앞으로 시민이나 민중 위에 군림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저 '대표(代表)'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민장'처럼 비교적 소박하고 진솔한 직함이 통용되는 날이 올까. 오늘날 느끼는 '大統領'과 같은 험한 언어를 진솔하고 민주적인 직책과 연결짓는 상상 자체가 도리어 시민과 민중의 대표에 대한 모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름이라도 달리 쓰게 되면, 권위적인 언어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권력욕이라도 줄일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참고>
송민, "대통령의 출현", [새국어생활] 제10권 제4호(2000년 겨울)
정병준, [우남 이승만 연구], 역사비평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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