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등학생 200여명의 수학여행 장면, 산으로 올라가는 중에 수도 없이 많은 복분자가 인상적이었던 하이델베르크
이성애
#. 새것으로 다시 가져오세요하이델베르크를 시작으로 독일 여행을 시작하는 때였다. 물건을 사러 마트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구입한 것이 많아져 남편도 나도 품 안에 물건을 겹겹이 껴안고 있었다. 먼저 계산대에 도착한 후 남편을 기다리는데 다가올수록 좋지 않은 표정이다. 그의 눈짓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6입 묶음 달걀꾸러미에서 노란 국물이 줄줄 세어 나오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다. 떨어뜨린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라며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한국에서도 보통 이렇게 했으니까.
20대 젊은 계산원이 그건 도로 가져다 놓고 다시 새 것을 가져오란다. 우리 잘못이라 했더니 중요치 않단다. 깨진 달걀은 이미 계산원에 의해 저쪽 어딘가로 치워졌다. 남편은 새 것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또 내가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골라온 복숭아 아래쪽이 짓물러 썩은 것을 가리키며 이것도 새 것으로 다시 바꿔오란다. 복숭아에 대해선 당연히 바꿔올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간 뒤 '똑똑하지 않은 소비자'라 말하든 말든 그의 간섭이 고마웠다. 남편도 나도 몸은 좀 바빴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 당신을 믿으니까요포츠담에서 묶은 이 곳은 별 4개짜리 캠핑장이다. 즉 편의 시설, 마켓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독일 캠핑장에서만 유독 특이한 것이 있다. 빵을 사고 싶으면 그 전날 미리 리셉션이나 마켓에 주문을 해야 한다. 주문 받은 양에 한해 물건을 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필요한 물건만 가져오니 버리는 것이 없을 것이다. 참 합리적이긴 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전 예약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어느 시간에 가든 내가 원했던 빵을 먹을 수 있다. 물론 즉흥적으로 맛있어 보이는 빵을 먹을 수 없긴 하다.
첫 날은 크루아상 2개, 치즈 빵 2개, 짧은 바게트 1개를 주문했다. 주문함과 동시에 계산을 하는데 그 영수증을 잘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 날 그것을 내보이면 빵과 바꿔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아침에 빵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영수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 한참을 찾은 후 차 안에 구겨져 있는 것을 간신히 찾아 마켓으로 갔다. 정말 상큼 발랄한 에너지가 기분 좋게 전달되는 스태프가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높은 톤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국에 있을 내 지인이 떠올랐다.
나: 빵 바꾸려면 이 영수증 잃어버리면 안 되지요?스태프: 네네~ 잃어버리면 안 돼요.나: 아침에 이것 찾느라고 힘들었어요. 스태프: 그래도 꼭 찾아야 돼요. 그녀에게 빵을 받은 후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을 또 주문하고 계산도 끝냈다. 집으로 돌아와 영수증을 잘 보관한다고 둔 곳이 텐트 주머니 중 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계산한다는 조건하에 주문한 빵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리셉션에 갔다. 처음 보는 다른 스태프가 있다.
나: 어, 빵 영수증을 잃어버렸어요.다른 스태프: 뭐 주문했는지 알아요?나: 크루아상 2, 치즈 2, 바게트1이에요. 다시 계산하면 되나요?다른 스태프: (빵을 챙겨 건네며) 다시 계산하지 않아도 돼요.나: 그래도 영수증을 잃어버렸잖아요.다른 스태프: 당신의 말을 믿어요. 괜찮아요. 나: 우와~ 고마워요.
돈으로 따지면 기껏 6000원이지만 '트러스트'라는 단어를 써서 나를 믿어주는 그녀가, 이곳의 여유와 정신이 멋지단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