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된 시간보다 더 일하면? 손해는 당연히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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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1시간은 더 일찍 나갔다. 혹시라도 늦을까봐. 감시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시간에 맞춰 끝내야 한다. 계약된 시간보다 더 걸리면 손해는 결국 청소하는 사람의 몫이다. 각오를 다졌지만, 결과는 지각. 한 사이트에서 계속 일이 밀리니 시간이 모자란다. 배운대로 해야 하기에 빼먹을 수도 없다. 헉헉거리면서 손을 놀릴 때 전화가 온다. 슈퍼바이저다.
"어디야?" 슈퍼바이저가 확인 차 전화를 걸었다.
"OO이요.""늦었네."
긴 대화 없이 전화가 끊겼다. 침묵의 시간은 가장 긴 법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책임의 크기는 자신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워홀러는 떠나가는 사람이야. 결국 일을 일같이 안 한다고. 여기 사람한테는 생계잖아. 그런데 걔네한테는 아르바이트인 거야. 마음가짐이 같겠어? 여기 사장들은 그것을 의심한다고."이런 의심이 싫어 일찍 나오려고 했건만 되는 일이 없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슈퍼바이저, 구원의 손길을 뻗다이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문 열어줘."슈퍼바이저다. 그는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그럴 줄 알았어.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실수며 지각이며 하더라."그는 묵묵히 밀린 일을 거든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처음엔 다 그런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그래도 지각이며 실수며 너무 많이 한 거 아닌강? 괜히 폐만 끼치고….""원래 이런 거 하려고 하는 게 슈퍼바이저인거야. 괜찮아."사장에게도 전화가 온다.
"늦었다며? 처음이니까 그런거지. 다음부터 잘하면 돼. 좀 더 일찍 나오고."예상했다는 듯한 말투다. 마음이 놓인다. 잘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그라든다. 이곳 호주에서 나를 지켜줄 것은 없다. 법의 보호를 받는 처지도 아니니까 말이다. 사장과 슈퍼바이저의말에 내 불안은 안도로 바뀐다.
직접 만나자는 쪽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