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0일의 병상 모습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복강에 도관을 넣는 수술을 받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의 내 모습이다. 늙은 모습에 슬픈 표정이다.
지요하
2008년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 사고와 관련하는 큰 병고를 치르고 44일 만에 퇴원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그 병고 이전에는 대체로 젊은 모습이었다.
동창들 모임에 가면 내가 제일 젊다는 말을 듣곤 했다. 젊게 사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도 받았다. 특별한 비결은 없고, 늦게(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아직 아이들이 어린 덕이라는 말로 답하곤 했다.
그렇게 젊음을 유지했던 내가 44일 동안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환자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는 순간, 모습이 폭삭 늙어 있었다. 이상한 행색의 노인이 서 있었다. 절로 눈물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때는 길게 울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8년이 흐른 2016년 6월 20일, 다시 병상에서 눈물을 흘리게 됐다.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환자들과 가족들이 많이 이용하는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복강에 도관을 넣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병실로 돌아와 복부에 노출되어 있는 연결관을 보자니 절로 눈물이 났다. 그것은 내가 신장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울 수 없는 증거물이었다. 신장 기능을 잃어 앞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날까지(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동안 복부에 달고 살아야 할 물건이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2008년 44일간의 병고를 치르고 퇴원할 때 내 신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된 연유로, 그동안 신장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신장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 많은 공력과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하지만 세월 따라 몸이 전체적으로 늙어가면서 한계점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그 모든 노력과 바램이 허사가 돼 버리고 복막투석을 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허망하고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사는 게 뭔지, 꼭 이렇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지, 너무도 참담하고 번뇌가 무성하여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때 한 친구가 내게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가 있었다. 음악 전문가인 태안성당 출신 첫 사제의 형이 되는 친구였다. 그가 보내준 노래는 개신교 합창단이 부른 <본향을 향하네>라는 노래였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나는 심야의 병상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여러 번 그 노래를 틀었고, 거듭거듭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나는 틈틈이 그 노래를 듣곤 한다. 그 노래를 들을 적마다 눈물이 난다.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면 가슴이 정화되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그대로 내게 위안이 되고 어떤 '희망'이 된다.
과거 젊은 시절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데, 합창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아니, 언젠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눈물지은 적이 있었지 아마….
요즘 합창곡 <본향을 향하네>를 다시 들으며 눈물을 흘리면, 눈물은 내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내 가슴을 정화해주는 것임을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투석환자인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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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기능을 잃었다... 노래 한 곡에 눈물이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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