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꿀벌들의 별난 민주주의 사랑

[리뷰] <꿀벌의 민주주의>(토머스 D. 실리, 에코리브르, 2012)

등록 2016.08.17 11:32수정 2016.08.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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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세계는 언제 봐도 신비롭기만 하다. 꿀벌은 분명 '꿀'을 쫓는다. 꿀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왕벌을 중심으로 경비 꿀벌, 청소 꿀벌, 건축 꿀벌, 소방 꿀벌 등 다양한 역할이 유기적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꿀벌들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개인의 이익과 집단적 행복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꿀벌의 민주주의>(토머스 D. 실리, 에코리브르, 2012)의 저자 토머스 D. 실리 교수에 따르면, 꿀벌 군락에는 하나의 여왕벌만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여왕벌이 자라는 동안 기존 여왕벌은 보금자리를 떠날 준비를 한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건 정찰벌들의 몫이다. 일벌들은 여왕벌이 비행 가능한 몸이 되도록 돕는다. 일벌들은 여왕벌의 먹이를 줄여 몸집을 25% 가량 줄게 한다. 떠날 때가 되면 벌들은 충분한 에너지를 위해 몸에 꿀을 잔뜩 채운다.

꿀벌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책 표지.  꿀벌들의 생활사가 경이롭다.
책 표지. 꿀벌들의 생활사가 경이롭다. 에코리브르
기존의 여왕벌은 원래 군락에서 70% 가량의 일벌을 데리고 떠나야 한다. 남은 딸 여왕벌은 30% 일벌과 벌집을 얻어 군락을 잠재적으로 불멸하게 만든다. 여왕벌이 없으면 군락은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군락은 여왕벌의 생사와 관련이 있어 꿀벌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 여기서 벌들 사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드러난다. 정찰벌들은 꿀벌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야 한다.

실리는 "집단행동에 대한 통제권이 수백 개체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이들은 각기 동등한 무게를 지녀 이루어진다"고 적었다. 한 정찰벌이 제안을 내놓으면 일벌들은 그 제안을 자율적으로 평가한 다음 거부할지 수용할지 결정한다.


그러는 동안 벌떼 표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다른 정찰벌이 일벌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심지어 네 번째 바람직한 보금자리를 열정적으로 광고한다. 정찰벌들은 다른 정찰벌이 광고한 보금자리로 날아가 탐색한다.

대개 보금자리는 입구가 10~30cm이며 지면과 가깝고, 남향에 위치할수록 선택 받기 유리하다. 포식자 접근과 외풍의 영향 그리고 햇볕을 받아 따뜻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겨울을 잘 날 것인지 꿀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리는 "정찰벌들은 여러 대안을 활발하게 광고하며 중립적인 벌을 자기 편으로 적극 끌어들인다"고 밝혔다. 중립벌은 어떤 장소를 지지했더라도 다시 냉담해져 다른 장소를 지지하곤 한다. 중립벌은 이전에 지지하던 장소와 새로운 장소를 비교하여 마침내 하나를 고른다. 때론 합의에 실패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정찰벌은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한다.  

보금자리 선택이 끝나면 꿀벌들은 분봉 준비를 한다. 정찰벌은 벌집 입구 밖에 있는 다른 벌들 사이를 재빨리 움직여 그들을 가슴으로 누른다. 비행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꿀벌은 인간과 같이 35도가 되어야 비행을 한다.

일벌은 흉부에 있는 비행 근육 두 쌍을 같은 크기로 수축하고 몸을 떨어 달아오른다. 준비가 끝나면 거의 모든 일벌이 벌집에서 급류처럼 쏟아져 나온다. 어미 여왕벌도 함께 밀려 나온다. 실리는 이를 "첫 분봉"이라 표현했다. 전체 집단의 약 3분의2, 즉 1만 마리가 기존 벌집을 떠난다.

꿀벌은 꿀을 좇는다. 꿀벌은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도 고려한다.
꿀벌은 꿀을 좇는다.꿀벌은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도 고려한다.위키백과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조화롭게

인류는 오래 전부터 꿀벌과 살아왔다. B. C. 13,000년 암각화에 인류가 야생 꿀벌로부터 꿀을 채취해 먹은 기록이 있다. 그런 꿀벌 군락(colony)이 인간의 삶을 흉내 내기라도 한 건지 인류와 비슷한 점이 여럿 발견되었다.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꿀벌에 매혹된 사람들이 꿀벌의 사회성을 정의하고 관찰해 나갔다.

<꿀벌의 민주주의>의 작가 실리도 그렇다. 실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양봉가의 발표회를 듣고 벌에 호기심을 처음 가졌다. 중학교 때는 곤충 연구에 흠뻑 빠졌고, 틈만 나면 벌과 벌통을 주문해 양봉 일을 하는 꿈을 꾸며 성장했다. 수십 년에 걸쳐 꿀벌을 연구한 실리는 현재 코넬 대학교 생물학 교수이자 양봉가가 되었다.

생물 분류는 종(Species)-속(Genus)-과(Family)-목(Order)-강(Class)-문(Phylum, Division)-계(Kingdom)로 구분되는데, 꿀벌은 이중 꿀벌과(Apidae)와 꿀벌속(Apis)에 해당하며 현재까지 아홉 종이 발견되었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에는 서양꿀벌(Apis Mellifera)이라는 한 종만이 서식할 정도로 꿀벌의 종 다양성은 적다.

한때 찰스 다윈은 여왕벌만 빼고 종족의 전 암컷이 자손을 생산하지 못하는 꿀벌들을 아주 당혹스럽게 생각했다. 종 다양성이 없으면 자연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도 세상에는 한 종만 있는 것처럼, 다윈은 고민 끝에 특성을 전수하는 꿀벌의 단위를 개체가 아닌 전체로서의 군락에 적용했다.  

꿀벌 집단의 생활사는 어떨까

꿀벌 집단은 일벌들이 딸 여왕벌 양육→어미 여왕벌이 일부 일벌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남→새 보금자리 일벌의 수가 예전처럼 증가→첫 번째 딸 여왕벌이 원래 보금자리를 물려받음→새 여왕벌의 짝짓기→일벌의 수가 예전처럼 증가→첫 번째 딸 여왕벌이 일벌 일부를 이끌고 떠남... 이런 순환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꿀벌은 각각 별개의 생명을 지닌 개체이다. 그러나 군락 전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 우리 몸의 수많은 세포와 같다. 벌집 속의 수많은 벌이 감독자 없이 협력해 기능적 단위를 이루는 것이다. 꿀벌 집단은 여왕벌과 일벌 그리고 수벌로 이루어진 사회다.

사실 꿀벌 군락의 꿀벌들은 모두 여왕벌 한 마리가 낳은 암컷 일벌이다. 일벌이 암컷이긴 해도 난소가 발달하지 않아 알을 낳을 수는 없다. 여왕벌만이 2~3년을 사는 동안 약 50만 개의 알을 낳는다. 인간으로 치면 하나의 수정란이 분화해 인간이 되는 것과 같다.

여왕벌은 태어난 후 첫 주에 다른 군락의 수컷 10~20마리와 공중에서 짝짓기를 하여 정자를 구한다. 여왕벌은 낳은 알의 약 5% 정도는 정자를 사용하지 않고 낳는데, 그 알은 후에 수벌이 된다. 정자를 사용해 낳은 알은 암벌이 된다. 인간 몸으로 치면 하나의 세포가 유전자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하는 세포로 분화되는 격이다. 저자 실리는 이를 "꿀벌 집단은 낮은 차원의 개체가 모여 사회를 구축해 높은 차원의 생물 개체를 만들어 진화해 왔다"고 표현했다.

여왕벌이 낳은 알은 3일 만에 깨어나 일벌의 분비선에서 나오는 단백질을 받아먹는다. 시간이 지나면 일벌은 유충이 먹는 단백질에 꿀과 꽃가루를 섞는다. 몸집이 커진 유충은 번데기가 되고 변태를 하여 성충이 된다. 만약 성충이 되기까지 유충이 일벌의 단백질만을 받아먹는다면 그 유충은 여왕벌이 된다. 여왕벌이 받아먹는 단백질을 로열 젤리라고 한다.

초개체성을 지닌 꿀벌

군락의 성장은 여왕벌 하나에 달렸다. 얼핏 종 다양성이 부족해 보여 꿀벌이 자연에서 생존하기 유리할까 걱정이 든다. 그러나 꿀벌이 인간처럼 생태 지위를 스스로 생성하고 척박한 환경에 대처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꿀벌은 포유동물의 자궁과 같은 안전한 내부 공간을 두어 유충을 안전하게 양육한다. 유충의 온도는 포유동물의 몸처럼 섭씨 35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를 위해 꿀벌은 집단으로, 다시 말해 초개체로 움직여야 한다.

실리는 "꿀벌은 집단 단위로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하고,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고, 자원을 순환시키고,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고, 수분과 체온을 조절하고, 환경을 감지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꿀벌들 스스로가 개인적 이익 상당부분이 집단의 행복에 달려 있고 또 집단의 이익 역시 개인에게 있음을 환기하고 있는 셈이다.

꿀벌 군락의 모든 꿀벌은 꿀 농축, 물 증발, 공기 교환 등의 모든 작업을 원칙적으론 수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빈도와 능력의 정도는 매우 다르다. 수집벌의 5%만이 꽃가루와 꿀 모두를 모은다. 이외에도 침입한 낯선 벌을 내쫓는 벌, 집 짓는 역할을 하는 벌, 너무 더운 벌통을 식히려 물 뿌리며 부채질 하는 벌, 벌집이 추울 경우 날개 근육을 움직여 에너지를 만드는 벌, 나쁜 공기가 있을 경우 벌집을 환기하는 벌, 질병에 걸리지 않게 여왕벌의 몸을 계속 닦아주는 벌, 죽은 애벌레나 벌을 벌집에서 제거하는 벌까지. 벌집이라는 군체의 항상성을 위해 꿀벌들은 각각 역할을 수행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들 벌들이 움직이는 원동력은 꿀이다. 수집벌은 벌집에 꿀을 저장하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몸 세포 활성을 위해 식사를 하는 것이다. 벌들은 에너지를 얻어 벌집이라는 물질을 유지하게 된다.  

열등한 선택지에서 훌륭한 보금자리를 골라내는 꿀벌의 능력은 대단하지만, 초개체로서 모두가 맡은 일을 하며 꿀벌 군락을 유지하는 능력은 무엇보다 신비롭다. <꿀벌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집단 결정과 관련해 꿀벌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곤충인 꿀벌은 언제부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주적인 절차를 익히기 되었을까. 어쩌면 인류 조상이 꿀벌을 보고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진 않았을까. 별별 꿀벌들의 별난 민주주의 사랑이 부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리뷰입니다.

꿀벌의 민주주의

토머스 D. 실리 지음, 하임수 옮김,
에코리브르, 2012


#꿀벌의 민주주의 #꿀벌 #민주주의 #토머스 D. 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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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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