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전용 음식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은 맛이 중요한 게 아니란다. 재료를 규격에 맞게 썰고, 음식을 위생적으로 하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배지영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규가 말했다. 스스로도 고민이라면서 어깨에 힘을 팍 줬다. 제규를 흔드는 게 뭔지 안다. 그건 바로 근육. 배우 마동석 같은 몸매에 흠뻑 빠져있다. 6kg짜리 아령을 양손에 들고 날마다 운동한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로. 등 근육이 궁금하다면서, 나보고 운동하는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라는 지시도 내린다.
"제규야, 그럼 한식 자격증만 따고 그만둘 거야?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연재도 끝내야겠네?""그런 건 아니에요. 한식 하고 나서는 양식, 중식, 일식 자격증 다 딸 거예요. 그 다음에는 복요리 배우고요. 근데 엄마, 헬스트레이너 해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나는 제규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도 좋다. 어차피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며 사는 게 당연해지는 시대. 다그치지 않을 거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면, 덴마크 청년들처럼 대해줄 거다. 그들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자기 진로를 찾게 정부에서 활동비를 대준다고 한다. 나도 그럴 거다. 입시학원 안 보내고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까.
우리 집에 다 와 가는데 해가 지려면 멀었다. 주말이니까, 친구들은 피(시)방에서 게임하고 있거나 편의점에 있을 거다. 제규는 주방장과 헬스트레이너를 두고 진로 고민할 때처럼 사뭇 진지했다. 집에 가서 말 안 듣는 '초딩' 1학년 동생이랑 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친구 수민에게 "지금 갈 수 있음"이라고 연락을 했다.
토요일, 우리 집 통금 시간은 <무한도전> 하기 전인 오후 6시. 제규는 3시간이나 지나서 들어왔다. 잔소리를 하자면 끝이 없다. 관심 있어 해서 사준 책은 제규 책꽂이에 그대로 있다. 한식조리사 필기시험은 닥쳐오는데 책은 지나치게 깨끗하다. 눈만 마주치면, '초딩' 동생이랑 마치 연년생 형제인 것처럼 싸운다. 내 마음을 '스캔'한 제규는 엄살을 부렸다.
"엄마, 2학년 여름방학은 너무 맘에 안 들어요. 1학년 겨울방학 때는 엄청 잤잖아요. 근데 지금은 진짜 바뻐. 요리학원 가야지, 헬스 해야지. 동생 밥도 차려줘야지. 엄마가 봐도 안 됐지? 놀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쳇!"나는 강경하게 나가려고 했는데 웃음이 났다. 가끔 하는 소리, "행복한 시키(자식)"가 튀어나왔다. 제규는 자기 생활을 맘에 들어 한다. 지금은 집에서 밥을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생기면 그만둘 수도 있다. 엄마가 학교공부 안 하는 아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도 안다. 직접 겪으면서 자기 길을 가는 고등학생에게는 멋짐이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