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의 무덤인 수릉.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에 있다.
김종성
효명세자는 성실하면서도 도전적이었다. 두 가지 특성 중에서 성실함은 할아버지 정조를 연상케 했다. 정조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업무처리와 독서로 눈코 뜰 새 없이 살았다. 다른 군주들도 다 그렇게 했지만, 정조는 유별나게 심한 편이었다. 마치 '일중독'에라도 걸린 사람 같았다. 효명세자의 성실성은 그런 정조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효명세자는 '절반은 정조'였다.
반면에 도전적인 특성은 다분히 증조부인 사도세자를 연상케 한다. 이 점에서 그는 정조를 닮지 않고 사도세자를 닮았다.
정조가 추진한 탕평정치는 특정 당파의 권력 독점을 견제하고 군주가 그 위에서 공평무사한 정치를 펼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탕평이 추진되는 속에서도 기득권 보수정당인 노론당의 우위는 깨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조는 노론당을 크게 자극하지 않았다. 탕평을 추진하되 기득권층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레 행동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노론당의 독점체제에 대해 상당히 도전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는 세자 시절인 열 살 때부터 노론당의 잘못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노론당을 비호하는 자기 아버지 영조까지 비판했다. 대리청정을 개시하자마자 안동 김씨를 자극한 효명세자의 도전성은 그래서 사도세자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효명세자는 '절반은 사도세자'였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하늘을 찌를 만한 능력을 겸비하지 못하면 별다른 소용이 없다. 사도세자처럼 효명세자의 경우도 그랬다. 대리청정 3년 반 동안 안동 김씨 독점체제를 깨뜨리고자 밤잠을 아끼며 살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대리청정 기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도세자는 도전적인 사람이지만, 성실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성에 대한 관심을 조절하지 못해 인생의 상당부분을 거기에 허비했고, 이 때문에 도덕성 시비를 자초하고 말았다. 공격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그는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참극을 당했다. 개혁의 선봉에 선 사람에게 명확한 도덕적 하자가 있었기 때문에, 개혁 저항세력이 이렇게 공개적이고 모욕적이고 처절한 방법으로 복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효명세자는 도전적이면서도 성실했다. 성실했기 때문에, 사도세자처럼 약점 잡힐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막강한 정치세력에 도전했으면서도 사도세자처럼 끔찍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다. 개혁 저항세력이 공개적이고 모욕적이고 처절한 복수를 할 만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절반만 사도세자'였기에 참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효명세자는 그저 갑자기 죽었을 뿐이다.
만약 효명세자가 개혁 의지에 더해 개혁 역량까지 갖추었다면 어땠을까? 의지와 능력을 겸비한 상태에서 대리청정에 이어 임금 자리에까지 즉위해 뜻을 펼쳤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마 적지 않게 변했을 것이다.
효명세자가 개혁세력의 지원을 받아 '안동 김씨의 나라'가 아니라 '모든 조선인의 나라'를 세웠다면, 조선은 '헬조선'이 아니라 신조선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1840년대 이후 본격화되는 서양의 공격 속에서도 조선은 좀더 색다른 제3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런 효명세자가 스물두 살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물론 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효명세자가 어떻게 그려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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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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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그린 달빛> 보기 전에 알아야 할 '효명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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