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상징이 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아곡의 태자리인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있다.
이돈삼
박수량(1491∼1554)은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태어났다. 24살 때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서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그럼에도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았다.
아곡은 세상을 뜨면서도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 것"을 유언했다. 형편이 어려워 장례를 치를 비용도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이 장례비와 함께 비석으로 쓸 돌 하나를 하사했다. 그러고선 "어설픈 글로 비문(碑文)을 새기는 게 오히려 아곡의 생애에 누(累)가 될 수 있다"면서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했다. 지금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백비(白碑)다.
비석에는 고인의 직위와 업적은 물론 이름 한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 직사각 모양의 대리석 위에 비신을 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대충 세워 놓지도 않았다. 잘 다듬어 놓았다. 이름 하나 남기지 않아서 더 귀하게 다가오는 비석이다. 묘비 주변도 늘 깔끔하게 단장돼 있어서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