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숙지원의 모습 이제 기본 적인 공간 분할이 끝나면서 안정된 모습이다.
홍광석
아직 지인들은 여전히 먹물냄새가 가시지 않은 사이비 농부라고 놀린다.
내면의 변화를 읽지 못한 놀림임을 알기에 그냥 웃기만 한다. 아마 지인들은 10여 년 전에 비해 나이 든 내 모습을 모를 것이다.
이제까지 외바퀴 수레에 20kg 짜리 비료 5개를 싣고 균형을 잡으면서 잘 나가던 시절이 갔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 사용할 목적으로 바퀴가 두 개인 수레를 구입하였는데 그런 사실도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집을 신축할 당시 화목보일러를 설치하고 추위에 대비하여 거실에는 점잖은 벽난로를 두었는데 지난해 화목 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교체했다. 큰 변화였지만 관심을 보인 지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화목보일러는 낭만은 있으나 시간 간격으로 화목을 투입하고 연통 청소를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려운 일을 피하고자 하는 준비 때문이라는 점을 모를 것이다. 단열과 보온이 잘되어 거실의 벽난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실내 인테리어 취급당하고 있음에도 그냥 보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외형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아무래도 내 의식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로 알았던 놀촌에 살면서 내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과학자들의 경고, 그리고 '북극의 눈물'처럼 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를 보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금년 여름의 우리나라의 폭염도 결코 우연의 결과는 아니라 기후 변화에 의한 기상 이변이라고 본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으로 알려진 화석연료의 채굴과 연료를 사용한 기술 개발의 배후가 자본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한다.
나아가 종자까지도 독점하는 거대 메이저 자본의 횡포와 유전자 조작식품의 폐해 등도 농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에 주목하고 있다. 나는 지금 기후 변화에 안이하게 대응하지 정부, 농업에 대한 고민 없이 대기업만 살리고 안보타령이나 하는 정부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
농업이 천하의 대본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이 좀 더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촌 이후 또 다른 나의 변화를 꼽으면 농산물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장에 가면 물건은 쌓여있으니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걱정 없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농산물의 생산과정에 참여하면서 쌀 한 톨 깨 한 알에 담긴 농민들의 땀과 한숨을 알게 된 것이다.
농산물 가격 정책은 그동안 역대 정부가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먹여살릴 목적으로 농민을 희생시켜 정책적으로 농산물가격을 낮게 유지해왔음이 사실이다.
그 결과 농민들은 농촌을 떠났고 농촌에는 마을 회관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며칠 전, 마을 쉼터에 누워있는 할머니들에게 참깨 농사가 잘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산을 사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산 참깨 한 되에 1만 2천 원, 기름 짜는 가격이 4천 원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농사지어봤자 헛것", "그나마 걷기도 불편한데 무슨 농사냐?"며 목침을 끌어당긴다.
이것이 농촌 마을의 한 장면이다.
앞으로 우리 농산물은 사라지고 더욱 귀해질 것이다.
"기후가 아열대로 변하면 그에 맞는 농작물을 찾으면 된다"고? "지금까지도 농약과 방부제에 절여진 농작물을 수입해서 먹고도 탈이 없었으니 괜찮다"고?
고작 작은 텃밭 농사 체험, 그리고 많은 농민들과 이야기, 농민교육 수강 등을 통해 알게 지식으로는 전문적인 자료를 제시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 걱정이 체험과 관찰에서 비롯된 사실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