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요청으로 1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책
이준수
'너와 나, 존재의 소중함'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첫 번째 사연을 함께 보자. 어느 해 유월의 1학년 교실, 헝클어진 단발머리 여자애가 전학 온다. 부모님 두 분이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셔 손길이 미치지 못해 옷차림도 꾀죄죄하고 읽기, 쓰기, 셈이 느린 고운이다. 장난꾸러기 용훈이가 괴롭혀도 맥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는 여린 소녀는 좀처럼 학급에 적응하지 못한다.
선생님은 한글을 읽는데 서투른 아이들을 남겨 놓고, 사탕을 쥐여줘가며 나머지 공부를 시킨다. 그림책도 보여주고, 받아쓰기도 시킨다. 더딘 변화에 답답할 무렵 고운이는 개미 만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글을 읽기 시작한다. 그 순간의 기쁨도 잠시 자존감 낮은 8살 꼬마는 여전히 어둡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은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의 <강아지똥>을 읽어준다. 그날 무릎 자리는 고은이 차지였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강아지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부서진 채 땅 속으로 스며 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었어요.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맺었어요."선생님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었다. 그 후 아이들에게 책 읽은 느낌을 글로 쓰게 하였는데 고은이는 이렇게 썼다.
'강아지 똥은 냄새가 나도 민들래 꽃을 피었다. 나도 받아쓰기는 못하지만 나도 쓸모가 있다. 우리 친구들도'고운이는 별을 세 개나 받고 그걸로 부족해서 반 최고 상인 '선생님이 업고 교실 두 바퀴 돌기'까지 누린다. 이후 그녀는 작은 목소리지만 틀리지 않고 책을 읽고, 정성스레 일기를 쓴다. <강아지똥>으로 아이를 얻은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