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술대전’ 문인화 대상 작가 김수나씨
김수나 제공
"제 30대는 통째로 날아갔어요. 아이들 기르고, 살림하고, 서예실에서 가르치는 게 다였어요.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니까 제 정체성을 고민했죠. 그림을 못 그리고 있는 게 괴로웠어요. 작품 세계로 나가는 것도 겁이 났고요. 한참을 더 고민하고 나서야 작품을 시작했어요. 힘들 때, 항상 글씨와 그림에서 위로받고 길을 찾았으니까요."
어린 수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표현도 못 했다. 몇 년간 했던 무용은 무대에서 독무를 맡게 되니까 그만뒀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걸 못 견딜 것 같았다. 긴장감이 흐르는 교내 합창대회, 피아노 반주를 틀렸다. 어머니가 내심 전공으로 공부하기를 바라던 피아노는 공포감 때문에 계속 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수나가 곁을 내준 건 서예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술시간에 서예를 접했다. 담임선생님이 붓으로 쓴 글씨를 그대로 따라 쓰는 체본. 잘 썼다. 서예를 했던 선생님 눈에 수나의 글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서예대회에 출품했다. 수나가 생애 처음으로 쓴 붓글씨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5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서예학원에 다녔다. 지난달 1일, 문인화가 김수나씨를 만났다.
"글씨는 혼자서 쓰는 거잖아요. 말로 못 하는 걸 쓸 수도 있고, 좋은 시도 옮겨 적고요. 제가 중2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사춘기랑 맞물렸어요. 반항하는 사춘기가 온 게 아니었어요. 내면으로만 파고들었어요. 말문을 닫고 지냈어요. 원래 말이 없었는데 더 그런 거예요. 그때 서예를 한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서예를 했다. 학교에서는 특별활동 시간에 쓰고, 집에서는 어머니가 따로 마련해준 책상에서 밤마다 글씨를 썼다. 방학 때는 서예학원에 나가서 글씨를 썼다. 그녀가 고3 때,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에 서예학과가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였다. 대학 진학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분명한 목표가 있었으니까.
1989년, 수나씨는 서예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원광대학교 서예학과에는 전국 곳곳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수나씨의 동기는 40명. 그녀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온 학생은 13명, 서예학원을 운영하며 글씨를 쓰던 사회인 학생이 더 많았다. 수나씨는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야 비로소 알았다. 서예는 글씨만 따라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군자와 전각(나무, 돌, 금에 새긴 글자)도 서예의 범주에 들어간대요. 전에는 몰랐죠. 기록한 것들도 겉으로는 글씨일 뿐이지만 거기에는 역사와 철학이 담겨있어요. 고대에는 큰일을 앞두고 점을 치잖아요. 그 내용을 새긴 게 갑골문자예요. 그게 서예고요. 공부할 게 무궁무진해요. 저는 한글, 한문, 사군자, 전각, 그림 등을 배워나갔어요. 참 좋았어요." 1991년, 수나씨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했다. 뛸 듯이 기뻤다. 졸업을 앞둔 친구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녀는 작품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다. 책도 비싸고, 종잇값도 비싸니까 돈을 벌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집의 2층 옥상을 막아서 서예실을 열었다. 어머니는 특혜를 베풀었다. 월세를 안 받았다.
대학원 다니고, 서예학원 운영하고, 작품 활동하고. 20대의 수나씨는 결혼하면 삶이 달라질 줄 같았다.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그림 그릴 줄 알았다. 웬걸! 결혼한 여자들은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았다.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체감했다. 그래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공모전에 냈다. 계속 떨어졌다. 아기 낳고는 그림을 아예 못 그렸다.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까 10년이 지나버렸어요. 혼자서 다시 공부하고 그려서 전주 소리문화의전당에서 하는 아트페어 부스전(작가 여러 명이 같이 전시)에 참여했어요. 2009년이었어요. 같이 전시하는 작가님들이 저보고 너무 젊다는 거예요. 그때 제가 마흔 살이었거든요. 재주도 있고 가능성도 크다면서 계속 하래요. 큰 용기를 얻었어요. 공모전에 낼 작품을 준비해서 여러 번 도전했어요. 잘 안 됐어요. 그래도 연구하고 작품을 그렸어요. 2012년에는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개인전도 열었고요. 개인전 도록이 나왔는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내 이름으로 나온 걸 보니까 다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눈에 핏발이 서는데도 7~8개월간 잠을 못 자면서 준비한 거거든요."